BTS와 ARMY로 보는 팬덤 문화 – 제8부
산타뉴스 | 기획연재
산타뉴스 남철희 편집장
BTS를 사랑했던 한 소녀와 장기기증, 그리고 사랑의 또 다른 리액션
병원 복도에 보라색 풍선이 하나둘 떠 있었다.
하얀 병상 위에는 어린 소녀가 누워 있었고,
그 곁으로 의료진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조용히 걸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수술실이 있었다.
멜라니는 열한 살이었다.
BTS.
멜라니는 BTS를 직접 보고 싶었다.
2026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BTS 공연을 앞두고 멜라니는 어머니와 함께 산루이스포토시에서 멕시코시티까지 갔다. 하지만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멜라니가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공연장 밖에서라도 BTS의 음악을 듣고,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ARMY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리고 멜라니는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팬들이 서로 나누는 작은 선물, 이른바 ‘(프리비freebie)’를 준비했다.다른 팬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였다.그것은 비싼 선물이 아니었다.
작은 기념품이었고, BTS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서로 나누는 표시였다.
그런데 며칠 뒤,멜라니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닥쳤다.
멜라니는 뇌혈관 사고를 겪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열한 살.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멜라니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은 또 하나의 결정을 내렸다.
장기기증이었다.
멜라니의 장기는 여러 환자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다.
보도에 따르면 심장과 간, 신장, 각막 등이 멕시코 여러 지역의 환자들에게 전달됐으며, 최소 8명의 생명을 살리거나 삶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멜라니가 병원을 떠나는 날. 의료진과 가족들은 복도에 모였다.
보라색 풍선이 병상 주변을 채웠다.
보라색은 BTS와 ARMY를 상징하는 색으로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슬픔의 박수였지만, 동시에 고마움의 박수였다.
한 생명이 마지막으로 다른 생명에게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그때 멜라니의 어머니는 딸이 준비했던 마지막 프리비도 사람들에게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참 이상한 장면이다. BTS를 좋아했던 열한 살 소녀가 살아 있을 때는 팬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자신의 몸을 나누어 더 큰 선물을 남겼다.
작은 프리비에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까지.
멜라니가 BTS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멜라니는 끝내 BTS를 직접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멜라니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BTS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공연장까지 갔고,그곳에서 다른 ARMY들에게 선물을 나누었고,마지막에는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었다.
멜라니가 좋아했던 BTS의 음악이 말해온 사랑과 위로가, 어쩌면 멜라니의 삶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물론 장기기증은 멜라니가 혼자 결정한 일이 아니다. 가족의 아픔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멜라니뿐 아니라, 그 결정을 내린 가족에게도 깊은 존경을 보내야 한다.
사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멜라니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장기기증 때문만은 아니다.그 전에 이미 멜라니는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공연장에 갔지만,자신에게 남는 것을 챙기기보다 다른 팬들에게 선물을 나누었다. 이것이 팬덤의 아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그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멜라니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 아이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2026년 BTS 월드투어에서는 또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미국의 ARMY였던 애비 엘더(Abby Elder)는 생전에 BTS 공연을 직접 보지 못하고
2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딸을 기억하고 싶었던 어머니 제이미는 딸의 흔적을 작은 돌멩이에 담았다.
그리고 BTS 공연에 가는 팬들에게 부탁했다.
“Take her with you.”“그 아이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팬들은 그 돌멩이를 받아 BTS 공연장으로 가져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런던 등 여러 공연장으로 이어졌고,
ARMY들은 딸을 대신해 애비를 BTS 공연에 데려갔다.
한 사람이 시작한 추모가 세계의 팬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멜라니가 남긴 것은 생명이었다면, 애비가 남긴 것은 기억이었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다는 것.
피 한 방울도 사랑이 될 수 있다.
BTS와 ARMY 사이에는 생명을 나누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2020년 한 ARMY가 위급한 상태에 있던 할아버지를 위해 Rh-A형 혈액을 구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글을 BTS의 V가 보았고, 직접 혈액을 구해 달라는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필요한 혈액을 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절박한 요청이 팬덤으로 퍼지고,그 팬덤의 요청을 한 사람이 다시 넓혀,
결국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장기기증도, 헌혈도, 작은 선물도, 누군가를 기억하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사랑은 혼자 가지고 있을 때보다 나누어졌을 때 더 커진다는 것.
팬덤, 사랑을 행동으로 바꾸는 사람들
우리는 팬덤을 흔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고, 슬픔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한 사람의 선행이 다른 사람의 선행을 부르고, 마침내 생명을 살리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그때 팬덤은 단순한 모임을 넘어서 문화가 된다.
멜라니는 열한 살이었다.
BTS를 좋아했고, 공연장에 가고 싶었고, 팬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었다.
그리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이 좋아했던 BTS의 굿즈가 아니었다. 생명이었다.
한 소녀가 세상을 떠난 뒤, 적어도 여덟 명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중 누군가는 멜라니의 심장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멜라니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들도 멜라니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삶에는 멜라니가 남긴 시간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기억하고 싶다.
멜라니는 BTS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멜라니가 남긴 사랑은 BTS를 넘어 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그 사랑을 본 사람들은 다시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리액션이다.
한 사람의 사랑이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것.
사랑은 그렇게 세상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산타뉴스가 멜라니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열한 살 멜라니.
너는 BTS의 공연을 보러 갔지만, 우리는 이제 네가 남긴 이야기를 보게 되었어.
너는 팬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었고, 마지막에는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을 남겼지.
보라색 풍선이 가득했던 그 병원 복도에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슬픔만은 아니었을 것이야.
네 생명이 떠나는 슬픔과 함께, 또 다른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감사가 있었을 것이야.
사랑스런 멜라니,
너의 마지막 선물은 끝나지 않았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다시 웃고, 다시 가족을 만나고, 다시 내일을 꿈꾸고 있다면,
그곳에는 네가 남긴 사랑의 흔적도 있을 것이야.
고마워, 멜라니.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은 마지막 순간에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음 이야기 | 제8부 세계 곳곳에서 피어난 ARMY의 선행 - 사랑은 어떻게 전염되는가
멜라니가 남긴 마지막 선물은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그 마음이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질 때 사랑은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BTS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기부가 되고, 봉사가 되고, 때로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행동으로 이어졌을까.
그리고 왜 ARMY는 누군가의 선행을 보고 다시 선행을 시작하는 것일까.
제8부에서는 ‘사랑의 리액션’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팬덤을 넘어 하나의 나눔 문화가 되어가는 ARMY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