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다시 남겨진 익명의 손길…연말, 5천만원과 한 통의 편지
![익명 기부천사가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놓고 간 현금 뭉치와 손 편지 [사진제공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223/1766422465151_85527161.jpg)
경남에서 9년째 이어지고 있는 익명의 기부가 올해도 조용히 도착했다. 12월 22일 오후, 경남 창원에 있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에는 발신자 번호가 표시되지 않은 전화 한 통이 걸려 왔고, 통화를 마친 직후 모금함 뒤편에서는 현금 5천352만7천670원과 손 편지가 담긴 상자가 발견됐다.
돈과 편지를 남긴 이는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난치병으로 힘겹게 투병 중인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짧고 단정한 문장이 편지에 적혀 있었다. 연말을 앞둔 시점, 기부자는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흔적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 익명 기부는 우연이 아니다. 모금회는 전화 방식과 필체, 전달 시점 등을 종합해 2017년부터 꾸준히 고액 기부를 이어온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이 기부자는 첫 기부 이후 매년 연말마다 성금을 전해왔고, 서울 이태원 참사,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국내외 재난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빠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숫자는 그 꾸준함을 보여준다. 9년 동안 누적된 기부액은 약 7억4천600만원. 단발성 후원이 아닌, 특정 시기와 대상에 집중된 반복적 기부라는 점에서 지역사회 안팎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전달된 성금 역시 난치병 환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모금회 관계자는 “익명의 기부는 단순한 금액 이상의 울림을 준다”며 “이름 없이 전해진 뜻이 필요한 곳에 정확히 닿도록 투명하게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기부자의 신념이나 종교적 바람도 편지에 담겼지만, 그 표현은 과장 없이 담담했다.
연말이 되면 수많은 기부 소식이 쏟아지지만, 이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조용함’에 있다. 홍보도, 사진도, 인터뷰도 없다. 남은 것은 숫자와 손글씨, 그리고 반복된 선택의 기록뿐이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한 사람의 결정이 9년 동안 이어졌고, 그 사이 수많은 환자와 가족의 일상에 작은 버팀목이 됐다.
연말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이런 선택은 더욱 또렷해진다.
거창한 말보다 꾸준한 행동이 무엇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기부는 드러남이 아니라 지속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조용하지만 지속된 나눔은 여전히 가장 강한 울림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