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점수에 가려진 천재성
![[퍼블릭 도메인]](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0909/1757372277608_178435106.jpg)
교육 진단 그 진단과 대책
국내 입시에서 스펙에 밀려난 10대 영재들이 해외에서는 전액 장학금을 받는 인재로 인정 받고 있다.
창의력이나 열정보다 한 문제 더 푸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우리 입시제도의 전면 재검토와 다양한 인재 평가 기준이 시급하다 -
작년 7월,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학생이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로 국내 최상위권 대학에 떨어졌다. 그의 탁월한 재능은 오히려 바다건너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눈에 띄어 전액 장학금 제의를 받고 진학을 앞두고 있다.
이것은 드문 사례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뛰어난 10대 두뇌 인재들이 국내 대학 입시의 '스펙'(표준화된 성적) 위주 평가에 발목이 잡혀 뜻밖의 탈락을 맞은 뒤, 그들의 잠재력을 알아본 해외 명문대로 속속들이 진학하는 '한국형 인재 대탈출' 현상이 녹록지 않다.
글로벌 인재 전쟁에 적극적인 해외 대학들만이 한국이 키워낸 천재들을 '덤'으로 얻어가는 꼴이 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교육계와 산업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장 진단: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 것들
"국내 대학은 제가 고등학교 3년 동안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연구에 매달렸는지 보지도 않았어요. 오로지 수능 점수와 내신 등급만 봤죠."
지난해 국제 정보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B군은 목소리에 석연치 않은 억울함을 담았다. 그는 수능에서 목표로 하던 대학의 커트라인에 약간 못 미치는 점수를 받으며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의 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수상 실적 외에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알고리즘에 대한 기록과 교사의 호기심과 끈기를 칭찬하는 코멘트가 빼곡했지만, 결국 '점수'라는 잣대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반면, 그의 존재는 해외 대학들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미국과 영국의 명문 대학 3곳으로부터 입학 허가와 함께 전액 장학금 제의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가장 높게 평가한 것은 그의 수능 성적이 아닌 올림피아드 성적과 그가 직접 작성한 연구 계획서, 그리고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코드 한 줄 한 줄 이었다.
입시 컨설팅 업계에 종사하는 C씨는 "매년 특정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보이는 학생들이 수능이나 내신에서 살짝 미달해 국내 상위권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며 "그런 학생들의 정보는 이미 해외 대학들의 인재 풀에 등재되어 있고, 이들은 오히려 '기회의 땅'으로 해외 진학을 택한다"고 말했다.
심층 진단: 왜 우리 시스템은 그들을 외면하는가?
1. 수능의 한계 드러나 - 하루 아침에 운명을 결정짓는 수능 시험은 공정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학생의 지적 호기심, 창의력, 도전 정신, 리더십 등 다면적인 잠재력과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무딘 도구다. 서울대 교육학과 D 교수는 "현행 입시는 '한 문제'를 더 맞히는 능력을 평가할 뿐, 10년 후 국가 미래를 바꿀 진정한 혁신적 인재를 골라내는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2. '안전한 스펙' 쌓기에 매몰된 생태계 대입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과 학교는 독특한 도전보다는 검증되고 안정적인 스펙(표준화된 교내 활동, 봉사 시간, 정형화된 자기소개서) 쌓기에 매몰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혜성같이 두각을 나타내는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인재들은 오히려 시스템에 짓눌려 기회를 잃기 쉽다.
3. 해외 대학들의 적극적인 우수 인재 유인 전략 - 프린스턴, MIT, 옥스퍼드 등 세계 최상위권 대학들은 전 세계에서 잠재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국제 대회 입상자 명단을 쫓고, 고등학교 성적보다는 학생의 연구 보고서, 포트폴리오, 추천서, 면접을 통해 그들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스카우트한다.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은 이들의 타깃이 되기 쉬운 구조다.
대책: 인재 대탈출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1. 학생부 종합전형의 혁신적 전환 필요 - 현행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는 옳지만 실제로는 스펙의 또 다른 경쟁장으로 전락하거나, 그 평가 기준이 모호해 공정성 논란에 휩싸인다. 개혁의 핵심은 질적인 평가의 내실화다. 학생의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열정과 성취(연구 보고서, 프로젝트 결과물, 포트폴리오, 교사의 질적인 평가 코멘트)를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투명한 기준 마련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평가 위원 양성이 시급하다.
2. 탁월한 재능에 대한 특별 전형 확대 및 체계화 -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재능(올림피아드 메달, 특허, 세계적 권위의 논문 발표 등)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수능 점수 등 일부 하위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거나, 별도의 독립적인 전형 과정을 통해 그들의 재능을 인정해 주는 '괴짜 천재(Geek Genius) 전형' 같은 특별한 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
3.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성 강화 - 대학 스스로가 필요한 인재상에 맞춰 논술, 면접, 교사 추천서 등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키워야 한다. 동시에 입시 비리라는 불신을 잠재울 수 있는 철저한 공정성과 투명한 시스템(면접 영상 녹화, 평가 기준 공개 등)을 동반해야 한다.
4. 장기적 비전 - 인재 유입보다 인재 유치가 중요하다. 단순히 국내 인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입시와 교육 시스템이 전 세계의 뛰어난 인재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영어 강의 확대, 국제적인 연구 환경 조성,우수 인재용 장학금 확충 등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자체를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단순 지식 재생산자가 아닌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가진 혁신가"라며 "입시 제도가 이런 인재를 선발하고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뛰어난 두뇌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해 해외로 떠나기 전에, 국내 대학과 입시 제도가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다양성의 눈'과 '미래를 보는 안목'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