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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고교 진학 희망자 증가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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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 먼저다
직업계고 진학희망 증가 현상은 단순히 학생들의 선호 변화가 아니다. 대학 중심 경로가 흔들리는 교육 시장의 현실이자 현장형 인력 부족을 겪는 우리 산업의 신호이다


 

‘대학 말고 기술’  직업계고교 진학희망 늘었다 — 교육·산업이 함께 바뀌는 중


 

최근 중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 진학을 현실적 선택이자 전략적 선택으로 보는 시선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성적이 안 되면 가는 학교라는 낙인이 강했지만, 지금은 취업-현장경력-후진학(전문대·사내대학·학위과정)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비교적 선명해지면서 진학희망자가 늘어나는 흐름이 관측된다. 배경에는 교육 환경 변화뿐 아니라, 산업 구조와 고용 시장의 압력도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취업이 먼저’가 된 이유 — 교육 현장의 체감
 

진학희망 증가를 설명하는 첫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다. 대학 진학이 곧 안정적 일자리로 이어지던 공식이 약해지면서, 학생과 가정은 학비·시간을 들여도 성과가 불투명한 경로에 더 신중해졌다. 반면 직업계고는 3년 동안 직무 기반 교육과 실습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병역·후진학 등 선택지가 생긴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예컨대 수도권의 한 중학교 진로상담에서는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4년제 전공이 꼭 답이냐는 질문이 늘고, 지역 산업단지와 인접한 학교에서는 기계가공·전기·용접 등 손에 잡히는 기술을 택하려는 학생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서비스업 중심이던 관심이 반도체·2차전지·스마트팩토리·디지털전환 같은 제조·기술 분야로 옮겨가며, 직업계고 학과 선택도 미래 산업과 연동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학과 = 직무’로 움직이는 진학
 

직업계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서사는 점점 다양해진다.
 

  • 사례 1(제조·설비) : 부모의 자영업이 불안정해지며 졸업 후 곧바로 월급을 받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해진 학생이 설비·전기과를 선택한다. 현장실습을 통해 지역 기업에 취업하고, 
  • 이후 야간·온라인 학위과정으로 ‘후진학’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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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례 2(IT·콘텐츠) : 게임·영상 편집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콘텐츠·디지털 계열 학과로 진학해 포트폴리오를 쌓고, 기능대회·자격증을 통해 채용형 인턴에 도전한다.  
  • 대학 대신 프로젝트 경험을 먼저 축적하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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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례 3(지역 정착): 수도권 대학 진학 비용이 부담이거나 지역을 떠나기 어려운 학생이 지역 특성화고에 진학해 지역 기업 취업→지역 정착을 목표로 삼는다. 지방 소멸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산업과 인구의 연결고리로 직업계고가 재조명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핵심은 직업계고 = 빠른 취업만이 아니라, 직무 역량을 조기에 쌓아 경력 기반의 이동과 ‘후진학’까지 염두에 둔 경로 설계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의 ‘이원화’
 

직업교육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는 오래전부터 학교에서만 배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도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도제(아프렌티스십) 기반의 이원화(VET) 시스템이다. 학생은 학교에서 기초·이론을 배우는 동시에 기업에서 훈련을 받으며, 훈련 자체가 사회적으로 정상 경로로 인정된다. 

중요한 차이는 취업률 숫자보다 직업교육의 위상이다. 

즉, 직업교육이 대학 경로보다 열등한 대안이 아니라, 산업이 신뢰하는 인력 양성의 표준 루트로 자리 잡는다.
 

또한 이들 국가는 직업교육 이후에도 경로가 막히지 않는다. 일정 경력과 역량을 갖추면 마이스터(장인) 자격, 응용과학대 진학, 관리·감독 직무로 승급이 가능해 ‘기술직의 사다리’가 제도적으로 설계돼 있다. 결과적으로 학생과 가정은 지금 선택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불안이 덜하다.


 

수요 커지지만, 조건이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 측면에서 직업계고 인력에 대한 수요는 구조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의 고도화, 현장 기술인력의 고령화, 뿌리산업 인력난,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신규 직무 등장 등은 현장형 중간기술 인력(테크니션)의 중요성을 키운다. 

대학을 나와도 바로 현장 투입이 어려운 직무가 늘수록, 직업계고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학희망 증가가 질 좋은 직업교육의 확대로 이어지려면 최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1. 현장실습의 질과 안전
    실습이 값싼 노동력으로 오해받는 순간 제도 신뢰는 무너진다. 
  2. 안전, 지도, 학습 목표가 명확한 훈련 중심 실습으로 재정비돼야 한다.
  3.  
  4. 2. 임금·처우의 현실 개선
    직업계고가 성공 경로가 되려면, 초임뿐 아니라 경력 상승에 따른 임금·직무 확장이 보여야 한다. 취업은 빠르지만 3년 뒤가 막힌다는 인식이 남아 있으면 진학 열기는 쉽게 꺼진다.
  5.  
  6. 3. 후진학·전직·승급의 사다리
    독일·스위스식 모델의 핵심은 이동성이다. 취업 후에도 전문대·학위·자격·산업전환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평생학습 기반의 경로 설계가 필요하다.

     

직업계고 증가는 교육 선택이 아니라 ‘산업 신호’
 

직업계고 진학희망 증가 현상은 단순히 학생들의 선호 변화가 아니다. 대학 중심 경로가 흔들리는 교육 시장의 현실이자, 동시에 현장형 인력 부족을 겪는 산업의 신호다. 

 

직업계고가 진정한 대안이 되려면 취업률 하나로 평가하는 관성을 넘어, 훈련의 질·처우·경력사다리·산학 신뢰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직업계고는 차선이 아니라, 미래 산업을 떠받치는 정상 경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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