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2
둘째 날, 나는 간다라미술의 본거지 탁실라로 향했다. 파키스탄은 인구 2억 3천만명으로 인구 세계 5위의 ‘인구강국’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의 가난한 농업국이고, 인구의 96%가 이슬람인 이슬람국가다. 따라서 길에는 가난한 삶, 그리고 얼굴을 가린 ‘여성억압’의 일상을 마주칠 수 있다.





깐수 정수일(1934-2025). 세계적인 실크로드 권위자인 그는 필리핀 국적의 중동전문가로 입국해 이 분야 권위자로 활동해 왔지만, 사실은 중국연변 출신 조선족으로 이집트에서 유학했고 이후 북한으로 귀화한 뒤 조국통일을 위해 남한에 ‘침투’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감옥에서도 실크로드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석방 후 여러 문명간의 교류를 연구하는 ‘문명교류학’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개인적으로 ‘문명교류학’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이 용어가 너무 ‘중립적’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즉 임진왜란도 이 시각에서 보면 ‘조선과 일본의 문명교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에서 배운 점도 많다.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 세계정벌 등은 부당한 것이지만 그것이 문명교류를 통해 세계문명을 발전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임진왜란은 정말 야만적 침략이었지만, 그 덕에 우리가 지금의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고추가 처음으로 한반도에 도입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정수일선생이 활동했던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석시인을 만나 정선생님과 교류하면서, 문명교류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
탁실라는 이를 실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아슬라마바드에서 서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탁실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파키스탄 판자브지역의 주요 문화유산이다. 간다라지역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고등학교 때 배운 간다라미술의 본산지다. 이 지역은, 다른 인도 파키스탄 지역과 마찬가지로, 원래 힌두교가 유행하다가 기원전 5세기 불교가 생겨나 불교가 유행했다. 하지만 간다라미술이 꽃피우게 된 것은 기원전 326년 알렉산더 대왕(BC356-BC323)이 이곳을 침공하면서이다.

알렉산더는 이곳을 침공하며 그리스문화를 가져와 그리스문화와 전통문화가 혼합된 헬레니즘문화를 꽃피웠다. 그중 주목할 것은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드는 그리스의 조각문화다. 이 같은 그리스의 문화는 석가모니상 등 불상을 사람 모습으로 만드는 불상문화와 간다라미술을 발전시켰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불상이라는 것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정벌이 낳은 문명교류의 산물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탁실라에서 특히 눈에 뜨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물관에서 본 석가모니상에 턱수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어 박물관 관계자에게 “석가모니가 턱수염이 있었느냐”고 묻자, 그것은 아니고 내세의 석가모니를 상상한 조각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 이미 2세기에 1대 1 강의를 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세워져 5세기까지 3백 년간 세계 각국의 왕자로부터 부유층 자제 등 엘리트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다. 특히 이곳에는 여자들도 입학을 허가해 여자들은 요리 등 당시 ‘여자들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