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2
산타 뉴스는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 대장정 15500Km, 중국을 보다>, <물속에 쓴 이름들,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 기행>, <카미노 데 쿠바: 즐거운 혁명의 나라 쿠바를 가다> 등 역사기행 책을 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번 여행기는 지난 7월 손 교수가 지상의 낙원인 ‘샹그릴라 ’이자 세계 최장수 마을인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는 카라코룸하이웨이로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건너 위구르족의 고향인 중국의 신장에 이르는 오지를 다녀온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를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연재한다.
둘째 날, 나는 간다라미술의 본거지 탁실라로 향했다. 파키스탄은 인구 2억 3천만명으로 인구 세계 5위의 ‘인구강국’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의 가난한 농업국이고, 인구의 96%가 이슬람인 이슬람국가다. 따라서 길에는 가난한 삶, 그리고 얼굴을 가린 ‘여성억압’의 일상을 마주칠 수 있다.





깐수 정수일(1934-2025). 세계적인 실크로드 권위자인 그는 필리핀 국적의 중동전문가로 입국해 이 분야 권위자로 활동해 왔지만, 사실은 중국연변 출신 조선족으로 이집트에서 유학했고 이후 북한으로 귀화한 뒤 조국통일을 위해 남한에 ‘침투’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감옥에서도 실크로드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석방 후 여러 문명간의 교류를 연구하는 ‘문명교류학’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개인적으로 ‘문명교류학’이라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이 용어가 너무 ‘중립적’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즉 임진왜란도 이 시각에서 보면 ‘조선과 일본의 문명교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에서 배운 점도 많다.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 세계정벌 등은 부당한 것이지만 그것이 문명교류를 통해 세계문명을 발전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임진왜란은 정말 야만적 침략이었지만, 그 덕에 우리가 지금의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고추가 처음으로 한반도에 도입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정수일선생이 활동했던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석시인을 만나 정선생님과 교류하면서, 문명교류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
탁실라는 이를 실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아슬라마바드에서 서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탁실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파키스탄 판자브지역의 주요 문화유산이다. 간다라지역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고등학교 때 배운 간다라미술의 본산지다. 이 지역은, 다른 인도 파키스탄 지역과 마찬가지로, 원래 힌두교가 유행하다가 기원전 5세기 불교가 생겨나 불교가 유행했다. 하지만 간다라미술이 꽃피우게 된 것은 기원전 326년 알렉산더 대왕(BC356-BC323)이 이곳을 침공하면서이다.

알렉산더는 이곳을 침공하며 그리스문화를 가져와 그리스문화와 전통문화가 혼합된 헬레니즘문화를 꽃피웠다. 그중 주목할 것은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드는 그리스의 조각문화다. 이 같은 그리스의 문화는 석가모니상 등 불상을 사람 모습으로 만드는 불상문화와 간다라미술을 발전시켰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불상이라는 것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정벌이 낳은 문명교류의 산물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탁실라에서 특히 눈에 뜨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물관에서 본 석가모니상에 턱수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같은 것은 본 적이 없어 박물관 관계자에게 “석가모니가 턱수염이 있었느냐”고 묻자, 그것은 아니고 내세의 석가모니를 상상한 조각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 이미 2세기에 1대 1 강의를 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세워져 5세기까지 3백 년간 세계 각국의 왕자로부터 부유층 자제 등 엘리트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다. 특히 이곳에는 여자들도 입학을 허가해 여자들은 요리 등 당시 ‘여자들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대학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1088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교가 세계최초의 대학이라는 설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설이고, 아랍권에서는 895년에 모로코에 세워진 알카라이인대학교가 세계최초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데 이보다 훨씬 빠른 2세기에 파키스탄의 탁실라지역에 1대 1 도제식 교육을 한 대학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동양의 교육기관들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받는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 기사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