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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 손실은 치매 촉발의 위험요인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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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청을 예방하자
난청을 방치하지 않는 작은 실천이 기억을 지키고 삶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치매를 부르는 침묵, 

청력손실이 만든 또 하나의 노년 위기
 

노년기의 난청은 더 이상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최근 의학계와 사회과학계는 청력손실을 치매를 촉발하는 주요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여러 국제 연구에 따르면, 중·노년기에 발생한 난청은 인지 기능 저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이며, 방치될 경우 치매 발생 위험을 크게 높인다. ‘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곧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난청이 치매로 이어지는 과정은 복합적이다. 우선 소리를 정확히 듣지 못하면 뇌는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억과 사고를 담당하는 다른 인지 기능이 위축된다. 또한 대화의 어려움은 사람들을 점점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고립과 우울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사회적 단절은 치매의 또 다른 강력한 촉진 요인이다.


 

현실의 사례는 더욱 뚜렷하다. 70대 남성 A씨는 몇 년 전부터 가족의 말을 자주 되묻기 시작했다. 대화가 힘들어지자 모임을 피했고, 결국 집 안에서 TV 소리만 크게 틀어 놓은 채 하루를 보냈다.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중등도 난청과 초기 치매 진단을 함께 받았다. 의료진은 ‘청력 문제를 더 일찍 관리했다면 인지 저하의 속도를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난청이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되며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많은 노인들이 보청기에 대한 거부감이나 비용 부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치료를 미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청력 손실은 관리 가능한 질환이며, 적극적인 개입이 치매 예방의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한다.


 

극복의 첫걸음은 조기 검진이다. 60세 이후에는 정기적인 청력 검사를 통해 변화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난청이 발견되면 보청기 착용이나 청각 재활 훈련을 통해 뇌의 언어 처리 기능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보청기를 착용한 노인들은 대화 참여도가 높아지고, 우울과 인지 저하 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회적 대응도 필요하다. 노인 친화적 음향 환경 조성, 보청기 비용 지원, 청각 재활 프로그램 확대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무엇보다 ‘잘 듣는 것’이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건강한 노년과 존엄한 삶을 지키는 기본 조건이라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치매는 가장 늦게 발견되는 질병이다. 난청을 방치하지 않는 작은 실천이, 기억을 지키고 삶의 연결을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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