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벽에서 시작된 나눔, 키스 해링

1980년대 미국 뉴욕 지하철역. 검은 종이로 덮인 빈 광고판 앞에 한 젊은 화가가 분필을 들었다. 몇 분 만에 완성된 단순한 선과 사람,
하트, 빛을 내는 아기의 그림은 출퇴근길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화가가 바로 키스 해링이었다.
195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해링은 뉴욕으로 건너와 예술을 공부했다.
그는 미술관보다 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장료를 내야 하는 전시장보다 누구나 지나가는 지하철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공간이라고 믿었다.
그의 그림은 어렵지 않았다.
굵은 선과 단순한 형태만으로도 사랑과 생명, 평화와 연대를 표현했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해링은 예술을 사회와 연결했다. 인종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작품을 남겼고,
에이즈 예방과 올바른 인식 확산을 위한 포스터와 공익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당시 에이즈는 두려움과 편견이 뒤섞인 질병으로 여겨졌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작업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학교와 병원, 지역사회 시설에 벽화를 제작했고, 아이들이 예술을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림은 전시장을 벗어나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마주했다.
1986년 뉴욕에는 '팝 숍(Pop Shop)'을 열었다. 티셔츠와 포스터, 배지, 장난감 등 다양한 상품에 자신의 작품을 담아 누구나 부담 없이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술은 일부 수집가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었다.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은 해링은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시간을 작품과 공익 활동에 더욱 집중했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89년 그는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그의 작품과 저작권을 관리하며 발생한 수익을
어린이 지원과 에이즈 관련 비영리단체 후원에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지금도 어린이 복지와 예술교육, 공공 프로젝트, 에이즈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키스 해링은 1990년 2월,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는 예술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의 그림은 오늘도 세계 여러 도시의 미술관과 거리, 학교와 병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생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Art is for everybody."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가 남긴 선은 단순했다. 그러나 그 선이 향했던 곳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