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는 안녕한가

‘스텔스 학폭’ 번지는 교실 — 감정·언어폭력 더 은밀해졌다
‘때리진 않는데, 매일 너 때문에 분위기 망친다는 말을 들어요.’
요즘 학교 현장에서 늘고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폭력만이 아니다.
표정과 말투, 단체방의 ‘읽씹’, 은근한 배제와 조롱이 누적되는 감정·언어폭력이 교실의 일상 갈등과 맞물리며, 교사가 알아채기 어렵고 증거도 남기기 힘든 이른바 ‘스텔스 학교폭력’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 학생은 별일 아닌데 예민한 것처럼 몰리고, 주변은 ‘장난이었다’는 말로 상황을 덮는다. 그러나 축적된 상처는 불안, 수면장애, 등교 회피로 이어져 학습과 관계 전반을 흔든다.
애매한데 아프다 — 스텔스 학폭의 전형
현장 교사들이 꼽는 유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감정 조종형이다. 특정 학생에게만 차갑게 대하고, 잘못을 과장해 죄책감을 심어 ‘네가 문제’라고 몰아간다.
둘째, 언어 ‘미세침’이다. 대놓고 욕설을 하지 않되 ‘쟤는 왜 저래?’ 또는 ‘원래 저런 애야’처럼 평가·낙인을 반복한다.
셋째, 관계 배제형이다. 모둠 편성에서 반복적으로 제외하거나, 쉬는 시간에 일부러 자리를 피하고, 생일·행사에서 특정 학생만 빼는 방식이다.
넷째, 디지털 스텔스형이다. 단체 채팅방에서 답을 안 해 고립시키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모티콘·밈으로 조롱하거나, ‘캡처 금지’ 분위기 속에서 음성·임시 메시지로 험담을 이어간다. 피해자가 항의 하면 ‘너 혼자 그렇게 느끼는 거야’라며 되레 과민반응으로 몰아 2차 상처를 남긴다.
갈등의 ‘가벼움’과 기록의 ‘어려움’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관계 맺기 방식의 변화를 든다. 또래 관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촘촘해졌고, 교실 내 작은 평판이 순식간에 공유된다.
갈등을 조정하는 대화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경쟁·불안이 커지면 직접 충돌 대신 ‘티 안 나게 밀어내는’ 방식이 선택되기 쉽다. 또한 스텔스 학폭은 상해 진단서처럼 분명한 물증이 없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해결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그 사이 피해 학생은 ‘말로만 당했는데 내가 약한 걸까’라는 자기비난에 빠지고, 가해·방관 학생은 문제 의식을 갖기 어렵다.
빨리, 작게, 반복적으로 개입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해결의 키워드는 조기 발견과 구조적 개입이다.
먼저 학교는 폭력 여부를 가르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관계 위기 신호를 체크해야 한다. 담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학년부·상담교사·전담기구가 함께 보는 공유형 관찰 체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결석·지각 증가, 보건실 상주, 급격한 성적 하락, 쉬는 시간 혼자 있는 패턴, 단체활동 회피 같은 징후가 포착되면 즉시 면담과 보호 조치를 가동한다.
둘째, 교육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 마라’는 훈계보다 효과적인 것은 구체적 언어 훈련이다. ‘
놀림과 ‘피드백’의 차이, 농담의 경계, 단체방 예절, 갈등 시 사과·중재 문장을 실제로 연습하는 사회정서학습(SEL) 프로그램을 정규 수업과 생활교육에 연결해야 한다.
셋째, 방관을 줄이는 장치가 필요하다. 친구들이 안전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익명 신고·상담 채널을 다변화하고, 중재는 배신이 아니라 보호라는 메시지를 학교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정과 지역도 역할을 해야 한다. 학부모는 ‘그 나이엔 그럴 수 있다’로 축소하기보다 자녀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조롱하는 말버릇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지자체·교육청 차원에서는 상담 인력 확충, 디지털 폭력 대응 매뉴얼 보급, 사안 처리의 전문성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스텔스 학폭은 흔히 ‘애들끼리 장난’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러나 상처는 장난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징후를 놓치지 않고, 교실의 언어와 관계를 훈련하며, 학교가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것, 그것이 은밀해진 폭력을 드러내는 가장 현실적인 시작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