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김형석 명예교수 ‘ 백 년의 유산 ’ 출간

• 105세 철학자가 묻는다 - 우리는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나이가 백 살을 넘으면 무엇이 남을까. 많은 사람은 기억이 희미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노년을 떠올린다.
그러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 통념을 조용히 뒤집는다. 105세의 나이에도 스스로 글을 쓰고 일정을 조율하며 강단에 설 준비를 하는 그는, 새로운 저서 『백 년의 유산』을 통해 오히려 ‘지금이 가장 많은 것을 나누고 싶은 때’ 라고 말한다.
긴 세월을 통과한 철학자의 이 고백은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사회에 단순한 감동을 넘어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김 교수가 한 세기를 건너오며 얻은 결론은 단순하다. 그리고 바로 그 단순함이 무게를 갖는다. 그는 행복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 누군가에게 기여하는 데서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화려한 성공이나 소비의 크기가 아니라, 옆의 사람을 얼마나 보듬었는지에 삶의 품격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가치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길을 잃기 쉬운 우리에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만든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김 교수가 노년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는 늙음을 퇴장이 아니라 새로운 기여의 시작으로 본다. 실제로 이번 책을 준비하며 그는 ‘배움과 일은 사람을 늙지 않게 한다’고 썼다. 초고령 사회를 향해 가는 한국에서 이 메시지는 노년 담론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생산성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경험과 지혜가 다시 공동체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삶이 하나의 증거이고, 그의 책은 그 증거를 언어로 정리한 기록이다.
젊은 세대가 그의 책에서 얻을 메시지도 분명하다. 그는 청년에게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그 안에서 발견된다’고 조언한다.
선택의 부담, 불안한 미래, 경쟁의 압박 속에서 정답을 찾아 헤매는 청년들에게 이 문장은 도착점보다 과정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김 교수의 조언은 화려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경험에서 나온 만큼 오래 남는다.
『백 년의 유산』은 거대한 사상서도 장대한 회고록도 아니다. 그가 시대를 관통하며 겪은 고난과 기쁨, 사람과 사회에 대한 믿음이 응축된 작은 지혜의 묶음이다.
그러나 이 작은 묶음은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선한 마음의 기반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힘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갈등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판단하려는 습관이 앞선다.
김 교수는 그런 우리에게 ‘이해와 용서는 가장 강한 지적 능력’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도덕적 당부가 아니라, 한평생을 돌아본 사람이 남긴 실천적 철학이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백 년을 살아보니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사랑한 일들뿐이었다’고 고백한다.
긴 세월을 지나온 철학자의 이 한 문장은 요란한 담론보다 더 강한 울림을 준다. 우리는 늘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하는지 고민하지만 정작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는 자주 잊는다. 김 교수가 남긴 ‘백 년의 유산’은 이 단순한 진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
105세 철학자가 남긴 시선은 결국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마음을 남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