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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 든 여자는 안 만나

류재근 기자
입력
우리 사회의 혐오와 갈라치기 양극화의 현실
명품 가방을 든 사람들, 문제는 가방이 아니라 가방 하나로 인간을 판단하는 것이 더 큰 사회적 문제이다


 

‘샤넬백 든 여자는 안 만난다’

 

소비 기호가 인간 평가표가 된 시대


 

샤넬백 든 여자는 안 만난다, 믿고 거른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데이팅 담론에서 반복되는 이 문장은 단순한 개인 취향의 표현을 넘어, 한국 사회가 마주한 혐오·갈라치기·낙인찍기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정 소비재, 특히 고가 명품 가방을 든 여성에 대한 일반화는 개인의 성격·가치·관계를 단번에 재단하는 즉결 심문처럼 작동한다. 왜 이런 인식이 확산됐을까.

 

첫째, 경제적 불안의 전이다. 

취업난과 주거비 상승, 장기 저성장 속에서 청년 남성 다수는 미래의 예측 가능성을 잃었다. 불안은 종종 다른 사람에 대한 단순화로 표출된다. 명품은 과소비나 허영의 기호로 압축되고, 그 기호를 소유한 개인은 위험한 파트너라는 프레임에 갇힌다. 실상은 소득·가정 배경·선물·중고 거래 등 다양한 경로가 존재함에도,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심리가 낙인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둘째, 데이트 시장의 플랫폼화가 가속한 인상 판단의 속도전이다. 

프로필 몇 장과 짧은 문구로 사람을 고르는 환경에서, 시각적 단서는 시간 절약용 규칙으로 과잉 활용된다. 가방 하나가 생활태도·금전관·관계 안정성까지 대리 표상한다. 이는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계적 편의와 편견의 결합이다.

 

셋째, 젠더 갈등의 서사화다. 

온라인 담론은 개인의 경험을 구조적 적대 서사로 재포장한다. 일부의 부정적 연애 경험이 명품=문제적 여성이라는 도식으로 확장되며, 반대편에서는 이를 여성혐오로 규정해 맞불을 놓는다. 결과적으로 대화의 공간은 줄고, 상호 이해 대신 집단 정체성의 방패만 두꺼워진다.
 

넷째, 소비의 도덕화다. 

한국 사회에서 소비는 오래전부터 계층·성취의 신호였다. 그러나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신호는 도덕 판정으로 바뀐다. 검소함=미덕,  명품=비난이라는 이분법은 개인의 선택을 윤리 심판대에 올린다. 문제는 이 도덕화가 성별·계층과 결합해 특정 집단에만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결국 정치·경제적 양극화의 일상화다. 분배와 기회의 문제를 구조로 다루지 못할수록, 일상에서 만나는 타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치환한다. 갈라치기는 클릭을 부르고, 혐오는 공감을 모은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분노를 증폭시키고, ‘믿고 거른다’는 문장은 사회적 상식처럼 소비된다.
 

해법은 개인의 취향을 검열하는 데 있지 않다. 

첫째, 청년의 불안을 완화할 실질적 정책인 주거·일자리·부채, 등이 병행돼야 한다. 

둘째, 플랫폼의 책임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혐오를 확산하는 프레이밍을 완화하고, 맥락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추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미디어 이해력과 성찰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한 개의 기호로 한 사람을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사회적 비용을 떠안는다.
 

명품 가방을 든 사람도, 들지 않은 사람도 각자의 삶을 산다. 문제는 가방이 아니라, 가방 하나로 인간을 판결하는 습관이다. 이 습관이 굳어질수록 사회는 더 좁아진다. 혐오의 속도를 늦추고, 판단의 기준을 넓히는 것,

그것이 갈라진 시대를 건너는 최소한의 윤리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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