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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를 잃은 정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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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
부끄러움을 잃은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 먹는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책임지는 태도, 상대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염치를 잃은 정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분노보다 먼저 허탈함이 앞선다. 누군가의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는 드물고, 책임은 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거친 말과 조롱, 혐오는 전략이 되었고, 거짓은 해명이라는 이름으로 반복 소비된다. 이 장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염치의 실종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순간에 당당해지는 사회,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맹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들었다.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다소 가혹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은 오늘의 정치 풍경 앞에서 오히려 정확하다.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에 사용해도, 거짓말이 드러나도,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도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는 모습은 부끄러움이 사라진 권력의 전형이다.


 

문제는 염치 없는 정치가 결국 시민의 윤리 감각까지 잠식한다는 점이다. 

정치 혐오가 깊어질수록 시민은 분노 대신 냉소를 선택한다. 

다 똑같다,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은 스스로를 관객석으로 물러나게 하는 주문이다. 

 

그러나 방관은 중립이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장면을 보고도 웃고 넘기는 순간, 우리는 그 풍경의 일부가 된다. 정치가 타락하는 속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시민의 감각이 무뎌지는 속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패는 죄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죄는 적어도 잘못을 인식하지만, 부패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 언어가 바로 그렇다. 사과는 곧 공격으로 바뀌고, 반성은 음모론으로 덮인다. 

책임을 묻는 질문은 정치 공세로 치부되고, 

도덕적 기준은 진영 논리 속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염치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염치가 사라진 사회는 법만 남는다. 

규정은 늘어나고 처벌은 강화되지만,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공동체를 묶는 힘이 사라지면 사회는 점점 거칠어진다. 

 

정치 혐오의 본질은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상실한 공적 언어와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다. 시민은 정치가 완벽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했을 때 인정하고, 책임지는 최소한의 태도를 요구할 뿐이다.


 

염치는 개인의 미덕이자 사회의 안전장치다. 

염치가 있는 사회에서는 말 한마디를 내놓기 전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말이 공동체를 더 나아지게 하는가라는 질문이 작동한다. 

반대로 염치 없는 사회에서는 자극이 곧 힘이 되고, 혐오가 곧 주목도가 된다. 

그 결과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소비된다.


 

이제 다시 염치를 말해야 할 때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책임을 지는 태도, 상대를 적이 아니라 시민으로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 

이것이 회복되지 않는 한 정치 개혁도, 사회 통합도 공허한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을 잃은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 파국의 책임은 권력자만이 아니라, 침묵과 냉소를 선택한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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