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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 해제된 23만 쪽, 마틴 루터 킹 암살의 진실은 밝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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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 해제된 23만 쪽, 마틴 루터 킹 암살의 진실은 밝혀졌을까

산타뉴스 이성로 기자
입력
“I Have a Dream”…그의 꿈은 여전히 살아있는가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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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수십만 군중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흑과 백이, 이웃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다.


그러나 그 꿈은 1968년, 테네시주의 발코니에서 총성과 함께 끊겼다. 그가 쓰러지자, 미국은 혼란에 빠졌고 인류는 상징을 잃었다.

 

그리고 반세기.
그 총성의 배후가 누구였는지를 두고 수많은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정부는 ‘진실’의 단서를 세상에 꺼내놓았다.
총 23만 페이지.
마치 벽돌을 한 트럭 쏟아낸 듯한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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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문서 전면 공개… 그 시작은 트럼프

 

2025년 7월 21일
미국 정부는 ‘킹 목사 암살’을 포함한 세 건의 정치적 암살 사건 관련 문서를 대거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존 F. 케네디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암살 관련 정부 기록이 모두 풀리게 된 것이다.


 공개된 문서는 FBI, CIA, 법무부, 국가정보국(DNI) 등이 작성한 수사 보고서, 내부 메모, 첩보, 인터뷰 등 방대한 분량이다.


“우리는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뒤집어보았다.”
털시 개버드 DNI 국장은 이렇게 선언하며 국민 앞에 문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폭탄급 진실’은 없었다? … 기대감은 실망으로

 

문서가 공개되자, 학계와 언론은 기대에 찬 눈으로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반응은 ‘시큰둥’했다. “놀라운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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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을 수상한 전기작가 데이비드 개로의 말은 이번 공개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료는 많았지만, 결정적 증거나 ‘반전’이라 할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서 상당수가 판독 불가능할 정도로 흐릿하거나, 해상도가 낮아 '보여주기용'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제임스 얼 레이라는 백인우월주의자의 단독 범행이라는 기존 결론을 뒤집을 증거도, 그렇다고 명확히 뒷받침하는 내용도 부족했다. 혹시 모를 킹 목사의 사생활이 공개돼 명예를 훼손할까 우려했던 유족들도, “딱히 문제될 내용은 없다”는 초기 검토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요란한 빈 수레’였다.
 

“왜 하필 지금?” 정치적 노림수 의혹 제기

 

공개 시점도 논란이다. 바로 앞서 트럼프 진영이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건 유출 문제로 거센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민권운동가 알 샤프턴은 “이건 엡스타인 사태의 불을 끄려는 연막작전”이라며 날을 세웠다.

킹 목사의 유족 또한 이번 공개를 반기지 않았다. 딸인 버니스 킹은 “아버지의 유산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가 세운 ‘킹센터’ 역시 “시기적으로도, 의도적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냈다.

 

실제로 FBI가 과거 킹 목사를 불법적으로 도청하고, 감시하며,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려 했다는 정황은 이미 알려져 있다. 이번 문서들이 그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반복 소환하는 데 쓰일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할까?


그 갈림길에 미국 사회는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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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텍스트 너머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문서가 ‘기록된 그대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당시 FBI의 수장 에드거 후버는 킹 목사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했고, 그를 사회주의자·폭력 선동가로 몰아붙이기 위한 보고서를 끊임없이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즉, 이번 문건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가 믿게 하고 싶었던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대 정치센터 소장 래리 사바토는 말했다.

“이 기록들은 누군가의 욕망과 의도가 필터처럼 덧씌워진 것이다. 액면 그대로 믿지 말고, 배경과 맥락을 읽어야 한다.”

 

그날의 총성과 2025년의 미국

 

2025년
킹 목사가 외쳤던 ‘인종 평등’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꿈은 아직도 거리에서 시위로, 국회에서 법안으로, 일상의 대화 속에서 쟁점으로 살아 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어쩌면, 한 사람의 죽음을 넘어 ‘정의란 무엇인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미국 사회의 오래된 질문을 되묻는 계기일지도 모른다.


 그의 유산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문서 한 장, 문장 하나로 진실이 밝혀지는 시대는 끝났다. 킹 목사의 유산은 활자로 쓰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사회의 움직임 속에서 실현된다.

 

이제 남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의미다.
23만 쪽의 문서를 넘긴 후에도, 미국 사회가 여전히 킹 목사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당신의 꿈에 가까워졌습니까?”

 


 

이성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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