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여행기
산타 뉴스는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 대장정 15500Km, 중국을 보다>, <물속에 쓴 이름들,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 기행>, <카미노 데 쿠바: 즐거운 혁명의 나라 쿠바를 가다> 등 역사기행 책을 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번 여행기는 지난 7월 손 교수가 지상의 낙원인 ‘샹그릴라 ’이자 세계 최장수 마을인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는 카라코룸하이웨이로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건너 위구르족의 고향인 중국의 신장에 이르는 오지를 다녀온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를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연재한다.
훈자강 동쪽 언덕 위에는 자그마한 바위산이 있다. 훈자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이 바위산은 오랜 훈자계곡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역사의 증인이다. 이 바위에는 기원후 1세기부터 민들어진 다양한 시기의 암각화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에는 말 등 다양한 동물들이 새겨져 있고 오랜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듯 불교탑의 초기형태들도 새겨져 있다.

설산과 빙하가 있는 동네에 가면 감탄하게 되는 것은 호수의 색깔이다. 비치색 호수는 빙하가 녹은 물의 독특한 특징으로 빙하 속에 녹아있는 미네랄과 바위가루 때문에 그러한 색이 나타난다고 한다. 신성한 바위산에서 멀지 않은 아타바드호수의 비치색을 즐긴 뒤, ‘인디아나 존스 다리’로 향했다.

인디아나 존스 다리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촬영한 장소는 아니지만, 영화 속 다리와 비슷하게 생겨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교각 없이 두꺼운 철선을 꼬아 만든 힘으로 매달려 있는 현수교다. 게다가 바닥 발판은 나뭇조각을 이어붙였는데 그 사이로 누런 흙탕물 강이 무섭게 흐르는 아찔한 다리다.
사람들은 물에 빠졌을 경우를 대비한 구명조끼를 입고 줄을 잡고 건넌다. 아찔하지만, 스릴도 있고 다리를 건너면서 설산 등 기가 막힌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어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쇠줄에 매달려 강을 건너는 장면이 인상적이라, 다리를 건너기보다는 사람들이 건너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헌데 현지 관광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줄을 서는 바람에 정작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제대로 찍지 못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훈자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파수빙하 방문이다. 2000년 남미의 끝 파타고니아에서 처음으로 빙하를 접한 뒤 여러 나라에서 빙하를 체험했다. 하지만 파수빙하처럼 고지대에서 빙하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 만큼 힘이 들었다. 빙하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숨이 찼고 무릎에 통증이 전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이 미워줬다.
“갯벌의 가치가 개발보다 훨씬 값집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1980년 광주학살 후 성난 호남 민심을 달래고 자신들의 죄를 무마하기 위해 제안한 새만금 개발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일부 지역개발주의들과 건설업자들이 부추긴 지역이기주의에 굴복해 새만금 강행을 결정했다.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가 3보1배로 반대운동에 나섰다. 나 역시 190센티미터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 상임의장으로 이에 동참했다가 무릎이 나가 의사로부터 등산 금지령을 선고받았다. 등산 금지령을 무시하고 무릎 보호대를 이중으로 차고 등산 스틱에 의지해 산에 올랐지만 한 걸음을 내딜 때마다 무릎 통증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빙하가 잘 보이는 중간지점까지만 가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생각했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각국에서 빙하가 녹고 있는데, 이상기온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빙하가 빠르게 줄고 있다고 한다.
헌데 트럼프 같은 미치광이가 나타나 기후 위기는 다 가짜 뉴스라며 지구 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적으로 합의한 최소한의 조치들조차 되돌리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자, 선생님과 현장실습을 나온 어린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전통춤을 추어 보여주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세파에 찌든 나의 머리를 씻어줬다. 한꺼번에 여럿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준비해 간 학용품과 과자들을 몽땅 나눠줬다. 뒤늦게 내려온 일행들도 차에 놔둔 학용품 등을 가져다 나눠줬다.
천진난만한 이들을 보고 있다 갑자기 70-80년대 우리를 이끌어준 선구적 언론인 리 영희 선생이 생각났다.
맹목적인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우리 사회에서 <우상과 이성>등의 책을 통해 우상을 깨는 비판적 시각을 가르쳐준 그는 <8억인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했다. 그는 돈의 노예가 된 우리의 의사들과 달리 중국의 ‘맨발의 의사’들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자신들이 환자를 구한다는 인류애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으며, 1976년 진도 7.8의 당산 대지진에서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당산 주민들은 이타적인 공동체 정신으로 이 재난을 극복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등소평의 개혁개방 후 당산을 다녀온 그는 시장이 도입되자 ‘돈독’이 오른 당산 주민들의 속물주의에 충격을 받고 “당산 대지진의 이타주의는 타락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짓 이타성에 불과했다"라고 절망했다.
맞다. 어린이들처럼 유혹에 부딪치지 않아 순수한 것은 진정한 순수가 아니다. 수많은 유혹과 세파를 겪고도 깨끗한 것이 진정한 순수함이다. 나는 이들 어린이들이 20-30년 뒤 세파를 겪고도 지금의 순수함을 지키기를 기원했다.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강 건너 산에 작은 길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길은 두 개다. 아래쪽의 누런색 흙길은 하이웨이가 생기기 전에 사람들이 사용하던 주도로로 여전히 동네 사람들이 자동차 등을 타고 다니고 있다. 위쪽에는 풀이 덮여 녹색으로 보이는 길이 끊어졌다가 이어지곤 한다. 혜초를 비롯해 옛사람들이 걸었던 옛길이다.
‘파키스탄판 차마고도’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동서양을 이어주던 옛 실크로드의 한 줄기다.

1300년 전 혜초가 이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문득 혜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파미르고원을 넘으며 남긴 시 한 편이 생각났다.
그대는 서역이 멀다고 한탄하고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
길은 거칠고 고개엔 엄청난 눈이 쌓였는데
험한 산골엔 도적떼가 날뛰는구나
새는 날다가 가파른 산 높이에 놀라고
사람은 굽은 나무에 의지하며 어렵사리 넘어가노니
평생 눈물을 흘리지 않았건만
오늘은 하염없이 떨어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