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 평생 번 돈을 사람에게 돌려준 '진짜 어른'…이름보다 사람을 남긴 삶

우리 사회에는 큰 부를 이루고도 잊히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경남 진주의 한약업사 김장하는 후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1944년 경남 사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낮에는 한약방에서 약재를 다듬고, 밤에는 책을 펼쳐 공부했다.
그렇게 스스로 길을 만들던 그는 1962년, 만 18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했다.
1963년 문을 연 작은 한약방은 시간이 흐르며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새벽부터 번호표를 받아야 할 만큼 사람들이 몰렸고, 한약방 앞에는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노점까지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김장하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쌓아두지 않았다.
그는 돈을 모으기보다 사람을 키우는 데 사용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이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장학금을 전했고,
그렇게 도움을 받은 학생은 1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학생들에게는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사회에 갚아라"는 말을 자주 남겼다.
그의 나눔은 교육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3년에는 사재 100억 원 이상을 들여 학교법인을 설립하고 명신고등학교를 세웠다.
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교육환경을 갖춘 뒤
1991년에는 학교를 국가에 기부채납해 공립학교로 전환했다.
문화와 예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역 서점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을 때 손을 내밀었고,
지역 문화와 역사 연구, 여성 인권, 환경, 시민사회 활동에도 조건 없이 힘을 보탰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이유를 묻기보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김장하는 자신을 알리는 데는 늘 인색했다.
학교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고, 재단을 운영하면서도 조용한 후원을 이어갔다.
은퇴를 앞둔 2021년에는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며 남은 기금 34억 원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하고 사회에 다시 돌려보냈다.
2022년 한약방 문을 닫은 뒤에도 그는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어른 김장하>는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김장하 선생의 삶을 기록한 MBC경남의 특집 다큐멘터리다. 김장하 선생은 19세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지역의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헌신해온 진주의 큰어른이다.[사진제공 나무위키]](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626/1782481720280_885215252.jpg)
그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린 것은 화려한 인터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오랫동안 이어진 그의 나눔을 알게 됐다.
2025년에는 어린 시절 장학금을 받았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과의 인연이 다시 조명되며 그의 삶은 또 한 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김장하는 돈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은 쌓아두면 썩지만, 나누면 꽃이 핀다."
그는 거창한 철학을 말하기보다 자신의 삶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누군가는 큰 건물을 남기고, 누군가는 화려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김장하는 사람을 남겼다.
그가 건넨 장학금은 한 학생의 등록금을 넘어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준 마음이었고,
그 믿음은 다시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부를 때 직함보다 먼저 이렇게 말한다.
'김장하 선생님.'
어쩌면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하는 어른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가장 따뜻하게 나눌 줄 알았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