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마을 주치의

1,894곳 보건진료소‘나홀로 의료’ — 농어촌 건강 지키는 한 사람
진료부터 방문건강관리·행정까지 의료취약지의 마지막 보루
도시에서는 몸이 아프면 가까운 병·의원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농어촌과 산간·도서지역의 현실은 다르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거나 수십 분에서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주민들에게
마을의 보건진료소는 단순한 의료시설이 아니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전국 보건진료소는 1,894곳에 이른다.
보건진료소는 애초 의사가 배치돼 있지 않고
앞으로도 의사를 배치하기 어려운 의료취약지역 주민을 위해 설치된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간호사 자격을 갖추고 별도의 교육을 받은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일정 범위의 진료와 투약, 예방접종, 건강증진 업무 등을 담당한다.
한 사람이 감당하는 ‘마을 주치의’ 역할
문제는 상당수 현장에서 전담공무원 한 명에게 업무가 집중된다는 점이다.
주민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경미한 질환을 진료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동이 어려운 고령자의 가정을 방문해 혈압·혈당 등을 확인하고 만성질환을 관리해야 한다.
여기에 의약품과 시설 관리, 각종 사업보고와 행정업무까지 겹친다.
특히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어촌에서는 의료 수요가 오히려 늘고 있다.
독거노인과 만성질환자가 많은 지역에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은 단순한 간호인력을 넘어
주민의 건강 변화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마을 주치의’에 가까운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보건진료소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도 안고 있다.
상황은 공중보건의사 감소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의과 공보의는 2025년 945명에서 2026년 587명으로 크게 줄었다.
정부가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을 인접 보건지소에 활용하고
비대면 협진을 확대하는 것도 지역 의료공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다.
‘한 사람의 헌신’에서 ‘지역의료 시스템’으로
해법은 보건진료소를 개인의 희생과 사명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우선 권역별 순회 지원인력과 행정보조 인력을 확충해
진료와 행정의 부담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보건소·지역병원과 연결되는 의사-보건진료 전담공무원 비대면 협진체계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즉각 상급 의료기관과 연결되는 이송체계 역시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농어촌 의료정책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보건진료소는 ‘작은 진료소’가 아니라
고령사회에서 만성질환 관리와 방문건강관리, 예방의료를 담당할 중요한 지역의료 거점이다.
1,894곳의 보건진료소를 한 사람의 헌신으로 버티게 해서는 안 된다.
의료취약지에 산다는 이유로 건강권까지 취약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