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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빛나는 손길, 연극으로 피어나다

산타뉴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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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극단 예술놀이터 나무 신작 〈마니또많이〉
예술놀이터 나무의 연극 <마니또많이> 홍보물. /예술놀이터 나무
예술놀이터 나무의 연극 <마니또많이> 홍보물. [예술놀이터 나무]

김해의 젊은 극단 예술놀이터 나무가 여섯 번째 창작극 *〈마니또많이〉*를 선보인다. 작품은 새벽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담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따뜻하게 전한다.
 

길고양이와 함께 시작되는 새벽

 

무대는 어둡고 차가운 새벽, 편의점 앞. 그런데 객석의 눈길을 가장 먼저 끄는 건 길고양이들이다. ‘사람마냥’, ‘잠오냥’, ‘까칠냥’은 바쁘게 움직이는 인간들을 의아해하며 춤추고 노래한다. 이 발랄한 시작은 곧 등장할 인물들의 고단한 하루와 대조를 이루며, 희망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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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의 사연, 그리고 연대

 

편의점 알바생 ‘육군’을 중심으로, 환경미화원, 대리기사, 배터리 교체 기사, 어머니 등 다양한 인물이 하나둘 모인다. 그리고 이들 앞에 어설픈 강도가 나타난다. 검은 비닐봉지를 휘두르지만, 안에는 흉기가 아닌 물총이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한때 잘나가던 식당 사장이었다. 광우병, 구제역, 코로나19,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모든 가게가 무너졌다. 마지막 희망으로 연 국숫집마저 정치적 격변 속에서 문을 닫자, 절망에 내몰린 끝에 편의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편의점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정을 듣고 함께 돈을 모아준다. “빚 갚지 말고, 더 힘든 이에게 나눠라”는 말은 작품의 핵심을 응축한다.

 

모든 노동은 거룩하다

 

연극은 강도의 고백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리기사, 환경미화원, 폐지 수집 노동자 등, 밤과 새벽을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가 무대 위에서 차례로 펼쳐진다. 관객은 그들의 노동이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도시를 지탱하는 ‘마니또’의 역할임을 깨닫게 된다.

연출을 맡은 박세환은 이렇게 말한다.

“낮 동안 우리가 버린 것들을 치우고, 도시를 정돈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역동적이고 활발하게 살아갑니다. 그 건강함을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합니다.”

 

저마다의 마니또, 우리 곁에

 

극본을 쓴 최진 작가는 실제로 새벽에 킥보드 배터리를 교체하고, 대리기사 일을 하며 얻은 경험을 작품에 녹였다. 그는 “내가 누군가의 딸과 아들을 돕듯, 언젠가 내 딸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품명은 〈마니또많이〉. 누군가 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마니또’가 사회 곳곳에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공연 정보

 

일시 : 9월 26일(목) 오후 7시, 9월 27일(금) 오후 3시

장소 : 김해 진영한빛도서관 대극장

관람료 : 무료

문의 : 010-9611-3569

 

작은 손길이 모여 만드는 큰 빛

 

연극 *〈마니또많이〉*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다. 대신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을 비춘다. 길고양이의 눈, 편의점의 작은 사건, 노동자들의 손길 속에서 관객은 묻는다.


“혹시 나도 누군가의 마니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길,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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