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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을 잃고도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왼손 하나로 명곡을 탄생시킨 파울 비트겐슈타인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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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서 오른팔 절단 후 연주자로 복귀…라벨에 직접 작품 의뢰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탄생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 1887년 11월 5일 ~ 1961년 3월 3일)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피아니스트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오른팔을 잃었지만, 많은 작곡가들에게 곡을 위촉하여 왼팔만으로 공연을 했다. [사진제공 위키백과]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 1887년 11월 5일 ~ 1961년 3월 3일)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피아니스트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오른팔을 잃었지만, 많은 작곡가들에게 곡을 위촉하여 왼팔만으로 공연을 했다. [사진제공 위키백과]

피아니스트에게 한쪽 손을 잃는다는 것은 연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사건이다.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었지만, 남은 왼손 하나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18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오스트리아와 영국의 철학자)의 형이기도 하다.

 

음악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고, 피아노를 공부한 뒤 1913년 빈에서 공개 연주회를 열며 피아니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전쟁이 그의 삶을 바꿨다.


1914년 오스트리아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은 전투 중 오른팔에 총상을 입었다. 러시아군의 포로가 된 뒤 부상이 심해 오른팔을 절단해야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두 손으로 건반을 익혀온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남은 것은 왼손 하나였다.


그는 피아노를 포기하는 대신 연주법을 다시 익혔다. 포로 생활 중에도 음악가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굳혔고, 왼손만으로 멜로디와 화음, 반주를 표현하기 위한 훈련을 거듭했다. 기존 피아노곡도 자신이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다시 무대에 섰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재기에 머물지 않았다. 왼손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당대 유명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의뢰했다.


모리스 라벨을 비롯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벤저민 브리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그의 의뢰를 받아 왼손을 위한 작품을 썼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의뢰로 탄생한 이 협주곡은 1932년 그의 독주로 초연됐다. 한 손으로 연주하지만 넓은 음역과 복잡한 화음, 고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왼손 하나로 피아노가 낼 수 있는 풍부한 음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두 음악가 사이에는 갈등도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라벨의 악보 일부를 자신의 연주에 맞게 바꾸자 라벨이 반발했다. 작품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장애를 이유로 배려받는 연주자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해석을 고집하고 작곡가와 논쟁할 만큼 음악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피아니스트였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면서 유대계 집안 출신인 그는 또 한 번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연주와 음악 교육 활동을 계속했으며 1961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작곡가들에게 의뢰한 작품들은 이후 왼손을 위한 피아노 레퍼토리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특히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지금도 세계 여러 무대에서 연주되고 있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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