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회장 기부로 한국 백신 임상 인프라 한 단계 도약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2021년 6월 박진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경북 안동시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료(임상시험용 백신) 생산공정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221/1766323515647_279999292.jpg)
정부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의 기부금을 활용해 국내 백신 임상시험 효능 평가 인프라를 대폭 확충한다. 질병관리청은 19일 국립보건연구원 등 생물안전 3등급(BL3) 시설을 갖춘 6개 기관과 협력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2025년 9월부터 6년간 추진되며, 재원은 이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부한 총 1조 원 중 감염병 연구 역량 강화 몫에서 마련된다.
이번 협약에는 국립보건연구원, 국제백신연구소, 국립중앙의료원,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고려대 의과대학 백신혁신센터가 참여한다. 이들 기관은 향후 신종 감염병 발생 시 백신 임상시험 효능 평가를 분담·동시 수행할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국내에서 백신 임상 효능 평가를 수행할 수 있던 기관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수백 개의 평가 기관을 운용하는 미국과 영국 등과 비교하면, 고위험 병원체 대응 인프라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협력은 이러한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사후 대응이 아닌 사전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참여 기관들은 두창, 엠폭스, 코로나19 변이, 인체감염 조류인플루엔자 등 우선순위 감염병을 대상으로 한 표준시험법을 공동 개발한다. 시험법은 기관 간 상호 검증을 거쳐 신뢰도를 높이고, 결과의 균질성을 확보하는 데 활용된다. 동시에 정기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문 인력 양성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국립보건연구원과 국제백신연구소, 백신안전기술지원센터는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검체분석기관 인증을 획득했다. 나머지 기관들도 2026년 하반기까지 인증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증 확대는 국내 백신 임상 결과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이번 사업의 출발점에는 이건희 회장 유족의 결단이 있다. 유족은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와 어린이 환자 지원을 위해 총 1조 원을 국가에 기부했다. 이 중 7000억 원은 병원 건립과 연구에, 3000억 원은 소아암·희귀질환 등 어린이 환자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단기 성과보다 공공 보건의 장기 기반을 다지는 데 초점을 둔 기부라는 평가를 받는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협력을 통해 신종 감염병 위기 발생 시 임상시험 결과를 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국내 분석기관들이 글로벌 수준의 전문 역량을 확보해, 국산 백신 개발과 감염병 대응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은 실험실에서 시작되지만, 그 성과는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이번 협력은 한 번의 기부가 끝이 아니라, 다음 위기를 준비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안전망을 선택한 결정이다.
그 선택은 위기가 닥쳤을 때 더 많은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국 사람의 생명으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