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중인 항암제를 자신에게 실험한 교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황 교수는 2022년 1월 연구실에서 개발 중이던 항암 백시니아 바이러스(OTS-412)를 자신의 몸에 직접 주사하고, 2주간 혈액을 채취해 면역세포(T세포)의 역동적 기능을 관찰하는 ‘자기실험’을 진행했다.

- 항암 백시니아 바이러스는 원래 천연두 백신에 쓰였던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고 유전자 조작을 해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게 만든 항암 치료제이다.보통은 사람에게 쓰기 전에 동물 실험에서 임상시험(정부 승인) 과정을 거쳐야한다.
- 그런데 황 교수는 동물실험까지만 마친 뒤, 사람 실험 전에 ‘자가 실험’으로 자신 몸에 직접 주사해서 면역 반응을 관찰했다.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OTS-412 임상시험 허가를 준비하던 황 교수는 이 자기시험 결과를 식품의약안전처에 보고했다가 고발됐다
황 교수는 약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는 유죄가 인정되고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교수가 “내가 만든 항암 바이러스가 안전한지 먼저 내 몸에 맞아보겠다!” 하고 직접 주사했는데,처음 약식기소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100만원)이 나오자 황 교수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약사법 위반은 인정된다. 다만 위법성이 중하지 않은 점과 피고인 성행, 동기 등을 참작한다”며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2년간 재범하지 않으면 사실상 무죄에 해당하는 판결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무결하다고 생각한 황 교수는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개인 이익 목적이 아니고, 공익에 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인체실험의 어두운 역사
인류 역사에서 인체실험은 오랫동안 과학 발전의 그늘로 존재했다. 고대·중세를 거치며 치료법 검증을 위해 노예·포로·죄수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드물지 않았다.
- 근대 초 유럽에서도 의학 발전의 윤리 기준이 확립되기 전, 빈곤층·정신병 환자들이 실험 대상이 되곤 했다.
- 20세기 전쟁기 나치 독일과 일본군 731부대는 전쟁 포로와 민간인을 대상으로 동상, 세균, 해부 등 비인도적 생체실험을 자행해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을 계기로 뉘른베르크 강령(1947), 헬싱키 선언(1964) 등 국제 인권·의학 윤리 규범이 제정되어 비자발적 인체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금지되었다.
자기 자신을 실험대에 올린 사람들
그럼에도 일부 연구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몸을 실험대에 올렸다.
- 에드워드 제너(18세기 영국 의사)는 천연두 예방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먼저 소의 두창 고름을 자신의 팔에 찔러 넣고, 이후 어린 아들까지 실험에 동원했다.
- 배리 마셜(호주 의사)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위염 원인임을 증명하려고 직접 세균을 마셔 위염에 걸린 뒤 치료했다.
-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나 실학자들 중 제자에게 시체 해부를 시켰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며, 의학 지식 확장에 기여했다.
- 일부 탐험가·과학자들은 신약·백신 실험, 고산·잠수 생리 실험, 방사선 영향 연구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윤리와 과학의 경계
자가 실험은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스스로의 위험을 감수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규제 절차를 우회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발성과 헌신이 뚜렷한 경우 ‘과학적 용기’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번 판결은 의학 연구의 자유와 안전 규제, 그리고 연구자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균형점을 다시 묻게 한다. 인류의 의학 발전은 누군가의 희생과 도전 위에 세워졌지만, 오늘날 그 방식은 인권과 윤리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이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