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20년을 끓여낸 한 끼

김영복(73)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은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경북 포항을 거점으로 이동식 급식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재난·재해 현장과 지역 취약계층을 찾아가 하루 수천 명분의 식사를 제공해왔고, 단체 운영은 회원 기부금과 자발적 봉사로 유지되고 있다. 지부장과 사무국장은 무보수다.
그가 이끄는 ‘사랑의 밥차’는 1998년 요리사 출신 봉사자가 시작한 비영리 급식 활동에서 출발했다. 영남권에서 상시 운영되는 지부는 경상지부가 유일하다. 김 지부장은 밥차 한 대로 시작해 사단법인 등록(2018년)을 마치며 운영의 투명성을 제도화했다.
재난 현장으로, 가장 먼저 ― 포항 지진 29일, 하루 4천 명분
김 지부장은 “재난이 나면 무조건 간다”고 말한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2017년 포항 지진, 2024년 경북 북부 산불 등 굵직한 현장에 밥차를 몰고 들어갔다.
포항 지진 당시에는 29일간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이재민에게 세 끼를 제공했다. 하루 4천 명분이다. 지난해 산불 때는 안동·영양·청송을 돌며 나흘간 삼계탕을 나눴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2014년 세월호 사고 현장도 다녀왔다.
평상시에는 포항 송도솔밭에서 월 2회 국수 봉사를 한다. 끼니를 거르기 쉬운 어르신들이 주요 대상이다. 메뉴는 요청에 맞춘다. 장애인이 원하는 음식을 현장에서 즉석 조리해 제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운영의 원칙 ― 회원 기부금, 무보수, 사단법인 등록
초기 운영비는 김 지부장이 운영하던 회사 수익금에서 월 150만~200만 원을 적립해 충당했다. 이후 회원들이 늘면서 회비와 기부금 중심으로 전환됐다.
2018년 사단법인 등록은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부장과 사무국장은 무보수다. 회원들은 회비 납부뿐 아니라 현장 봉사에 직접 참여한다. 가족 단위 참여도 늘었다.
김 지부장은 “돈과 관련해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구조를 먼저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 손으로 누르는 셔터 ― 장애인체육회 30여 년 홍보사진 봉사
그의 오른손은 1978년 산업재해로 절단됐다. 이후 관리직으로 근무했지만, 사진은 새 길이 됐다. 수술 후 사내 사진 동아리를 만들었고, 공모전 입상과 개인전으로 활동을 넓혔다.
1992년 바르셀로나 패럴림픽을 시작으로 주요 국제 장애인 체육대회를 촬영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사진을 무보수로 맡은 기간은 30년 안팎이다.
2018년 평창 패럴림픽에서는 성화 봉송 주자로 뛰었다.
지난해부터는 포항 월남참전전우회 요청으로 영정사진 촬영 봉사를 시작했다.
200여 명을 촬영했다. “연세가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이유다.

동기의 출발 ― ‘누구나 할 수 있는 봉사’
사랑의 밥차 활동은 2006년 배우 정준호 씨와의 인연으로 본격화됐다. 장애인 체육 홍보사진 촬영을 계기로 밥차 행사에 참여했고, 이후 경상지부 설립을 제안했다. “전국을 오가기보다 지역에서 책임지고 하겠다”는 선택이었다.
김 지부장은 봉사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큰 결기가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다. 하다 보면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한다.
숫자로 보는 김영복의 20년
* 활동 시작: 2006년
* 주요 재난 현장 급식: 다수(포항 지진 29일 포함)
* 하루 최대 급식: 약 4천 명분
* 사단법인 등록: 2018년
*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사진: 약 30년 무보수
* 월남참전전우회 영정사진: 200여 명(2025년 기준)
“할 수 있을 때까지”
70대 중반을 향해 가지만 그는 아직 현장을 놓지 않았다. 다만 후임을 찾고 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쓰는 일이라 선뜻 나서는 분이 적다”며 웃었다.
은퇴 후에는 여행도, 개인 사진 작업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밥차 일정이 먼저다.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짧게 남았다.
뜨겁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꾸준히 끓인다.
김영복의 20년은 거창한 구호보다 한 끼의 온도로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