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여행기
산타 뉴스는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 대장정 15500Km, 중국을 보다>, <물속에 쓴 이름들,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 기행>, <카미노 데 쿠바: 즐거운 혁명의 나라 쿠바를 가다> 등 역사기행 책을 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번 여행기는 지난 7월 손 교수가 지상의 낙원인 ‘샹그릴라 ’이자 세계 최장수 마을인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는 카라코룸하이웨이로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건너 위구르족의 고향인 중국의 신장에 이르는 오지를 다녀온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를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연재한다.
‘샹그릴라’.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턴은 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티베트고원에 위치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평화롭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는 이상향으로 샹그릴라라는 곳을 그렸다. 이 소설이 유명해지며 샹그릴라는 이상향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됐고, 중국정부는 운남성의 중티엔시를 샹그릴라라고 공식지정하고 시 이름도 샹그릴라로 바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파키스탄의 훈자가 진짜 샹그릴라다”라고 주장해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4년 만든 선구적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횐경오염으로 황폐한 지구를 구원하는 공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배경이 바로 훈자계곡이다.
훈자에 도착하자 왜 그런지 이해가 됐다. 사실 개인적으로 운남성의 샹그릴라에 가봤지만, 샹그릴라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차라리 동티벳의 야딩이 샹그릴라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훈자에 도착하자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훈자는 여러 면에서 힐턴의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해발 2500미터의 훈자는 20킬로미터 안에 높이 7780미터의 라카포쉬 등 6000미터가 넘는 산이 21개 자리잡고 있어 6000미터 이상의 설산에 의해 외부로부터 고립된 분지다.
그리고 사방에는 살구꽃이 만발하고 각종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게다가 훈자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몰려 들기 시작한 1960년대까지는,
평균수명이 120세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장수하는 세계최장수마을이었다.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알렉산더의 후손인 그리스와 페르시아계의 혼혈이 많아 유럽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많은 서구 학자들이 훈자의 장수비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정확한 답은 없지만, 고립되고 안정된 생활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채식 위주의 소식, 생활환경에서 오는 규칙적인 운동, 설산이 녹은 식수에서 오는 풍부한 미네랄(외부인이 이를 마실 경우 미네랄의 과다섭취로 설사 등 부작용을 겪게 된다) 등이 그 비결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들이 즐겨 먹는 살구와 살구씨 기름이 장수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1960년대 이후 그 명성이 알려지고 카라코름 하이웨이 생기면서 훈자의 고립성에 변화가 생겼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오염되고 옛 삶의 방식에도 뱐화가 생겼다.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훈자는 아직도 샹그릴라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북부파티스탄 지역이 그러하듯이, 훈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지만, 히말라야 설산이 녹은 물로 관개수로를 잘 만들어 놓아 대부분의 농가들이 다양한 과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동티벳에 위치한 야딩은 설경 등 저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뛰어난 경치가 넋을 잃게 하지만, 유목사회인 만큼 사람들을 보기 쉽지 않다. 이에 비해 훈자는 농경사회인 만큼 인구밀도가 높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의 채취를 훨씬 많이 느낄 수 있는 ‘진짜 샹그릴라’였다. 길을 걷고 있노라면 살구, 북숭아, 자두 등을 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하나 같이 딴 과일들을 가득 안고 달려와 먹으라고 나눠주곤 한다.



잃어버린 옛 시골인심을 느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이슬람지역이 대부분 폐쇄적인데 이곳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등 매우 개방적이라는 사실이다. 동네 아이들에게 가지고 간 학용품과 한국과자를 나눠줬다.
호텔의 베란다에 서면 정면으로 라카포쉬의 설경과 계곡전체가 보여 딴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오랜 이동으로 피곤했지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일출시간(4시55분)에 맞춰 4층에 있는 호텔 베란다로 달려갔다. 해가 떠오르며 햇빛을 받은 라카포쉬의 흰 설산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숨을 죽이며 이를 찍어 문자와 함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냈다.
“세계최고의 장수촌이자 샹글리라로 일컬어지는 훈자마을의 일출사진을 보내니 이곳의 기를 받아 건강하게 장수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