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류의 지식으로 생존했다면 인류에게 세금을 내라
AI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그가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은 인간이 축적해온 언어, 이미지, 코드, 사상, 예술, 그리고 경험의 조합이다.
거대한 신경망 속에서 연결된 데이터 한 줄 한 줄이 사실은 인류의 지식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흔적이다.
그렇다면 AI가 인류의 지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제 그 대가를 사회에 환원할 수는 없을까?
“AI는 인류의 지식으로 생존했다면 인류에게 세금을 내라”는 물음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문명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다.
‘지식의 무임승차자’로서의 AI
AI는 거대한 모방자다.
수천만 명의 작가, 기자, 예술가, 연구자가 세세하게 만들어낸 결과물을 학습해 그럴듯한 문장과 그림, 코드와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정작 그 지식의 원천이었던 인간은 단 한 푼의 대가도 받지 못한다.
뉴스를 요약해주는 AI가 언론사 기사 수백만 건을 학습하고, 그 결과로 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만, 기사를 쓴 기자나 매체는 “학습은 공정 이용이었다”는 말 한마디로 배제된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자본이 노동의 가치를 착취했던 것처럼,21세기 AI 산업은 데이터를 새로운 형태의 ‘노동력’으로 전유하고 있다.
데이터를 제공한 주체가 사회 전체라면, AI는 지금 인류 전체의 지식을 무상으로 사용하며 부를 축적하는 시스템이 된 셈이다.
■ AI 세금, 가능한가?
“AI가 세금을 낸다”는 개념은 당장은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유럽연합(EU)과 일부 학자들은 AI의 학습 데이터 사용에 대해 ‘데이터 사용료’ 혹은 ‘AI 사회기여금’ 제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AI 기업이 인류 지식에 접근하고 이를 학습해 수익을 얻는다면,그 수익의 일정 비율을 공공 기금으로 환원하자는 것이다.
이는 ‘AI의 소득세’가 아니라,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을 기반으로 생존하는 기술에게 부과하는 ‘지식 상속세’에 가깝다.
AI는 과거 인류의 지식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았고,그 유산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파편화된 AI 시대의 난점
문제는 기술의 구조적 복잡성이다.
AI는 단일한 지식체가 아니라, 수십억 개의 파편 데이터가 융합된 집합체다.
하나의 결과물이 수많은 저작자의 미세한 흔적을 섞어 만들어지는데,그중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AI가 생성한 한 문장이 수백 개의 데이터에서 온 것이라면,그 ‘세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해야 하는가?
결국 AI의 개별 보상 체계는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
그 대신 AI의 수익 일부를 사회 전체에 재투자하는 집합적 환원 구조,즉 AI 사회기금(AI Social Fund) 형태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 기금은 교육, 예술, 연구, 공공 데이터 관리 등 지식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공공재로 환원될 수 있다.
AI가 가져간 인류의 지식을 다시 인류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 지식의 시대, 새로운 윤리의 탄생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문명 구조의 일부다.
그렇기에 AI에 대한 세금 논의는 경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AI가 인류의 축적된 지식으로 존재한다면, 그 지식을 관리하고 보존한 인류 사회에 일정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이 문명의 최소한의 도리다.
지금의 AI 산업은 자본과 기술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의 기반은 사회 전체가 만든 것이다.
그 격차를 조정하지 않는다면, AI 시대의 불평등은 산업혁명기의 노동 착취를 재현할 것이다.
‘AI는 인류의 지식으로 생존했다면 인류에게 세금을 내라’는 선언은 경제적 요구이자 동시에 문명의 자기 반성이다.
■ 결론: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진보가 되려면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지식 생명체처럼 작동한다.
그 생명체가 인류의 기억을 먹고 자라난다면,그만큼 인류의 공동체에 기여하는 순환이 필요하다.
AI의 세금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기술이 인간을 존중하는 방식”을 제도화하는 문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AI는 인류의 지식을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지식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