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가난마저 빼앗긴 사람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가난에도 주인이 있을까. 가난은 누구나 잠시 입어볼 수 있는 낡은 외투일까.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은 제목부터 묘한 역설을 품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서 대체 무엇을 훔쳐갈 수 있다는 것인가.
작가는 그 마지막 남은 것마저 ‘가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누군가에게 생존인 가난을 다른 누군가가 경험이나 낭만으로 소비한다면, 그것은 과연 같은 가난인가.
가난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작품 속 ‘나’는 가난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난은 삶의 조건이었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가족의 몰락과 죽음을 겪으며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만난 상훈 역시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믿었다. 함께 추위를 견디고 초라한 밥상을 나누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동질감과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믿음은 무너진다. 상훈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선택한 일종의 경험이었다. 그는 언제든 가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주인공이 느낀 것은 단순한 실연의 아픔이 아니다. 자신이 목숨처럼 견뎌온 가난을 누군가 잠시 체험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의 고통마저 구경거리가 된 듯한 모멸감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사랑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난마저 도둑맞았다.
가난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이 작품이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야기는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오늘날에도 누군가에게 ‘소박한 삶’은 취향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는 작은 방에서 살아보는 것을 특별한 경험으로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방은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전부다.
그래서 박완서의 문학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하게 바라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태도를 경계한다. 가난의 가장 깊은 상처는 돈이 없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때문에 인간의 자존과 존엄까지 값싸게 평가받는 데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 겸손할 것
「도둑맞은 가난」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선명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얼마나 쉽게 말하고 있는가.
AI 시대에도, 풍요의 시대에도 가난은 사라지지 않았다. 청년의 주거 빈곤, 불안정 노동, 노년의 생활고처럼 그 모습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여전히 타인의 어려움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까닭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박완서는 가난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속에서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인간의 자존을 바라본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 사람이 견뎌온 삶의 무게다. 그러므로 타인의 가난 앞에서 필요한 것은 값싼 연민이 아니라 존중이며, 섣부른 위로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가난을 없애는 사회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사람의 존엄까지 빼앗지 않는 사회.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은 반세기를 건너와 우리에게 바로 그 오래된 숙제를 다시 건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