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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달라도, 새해의 소망은 하나

성연주 기자
입력
세계 5대 종교가 새해를 여는 방식

새해는 인류가 가장 오래도록 의미를 부여해 온 시간이다. 달력의 한 장이 넘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저마다의 언어로 소망을 빌어 왔다. 기독교·불교·이슬람교·힌두교·유교, 세계 5대 종교가 새해의 문턱에서 전해 온 메시지는 표현은 달라도 닮아 있다. 평화, 절제, 성찰,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다짐이다.


 기독교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이 그림은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식사 장면을 담고 있다. 예수가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열두 사도의 표정과 몸짓이 각기 다른 반응으로 펼쳐진다. 놀람, 분노, 의심, 침묵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다빈치는 이 장면을 통해 신앙의 교리보다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했다. 새해의 문턱에서 이 그림은 묻는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와 결단이 새해의 과제로 남는다.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기독교에서 새해는 ‘시간의 시작’이자 ‘은총의 갱신’이다. 연말과 새해를 잇는 송구영신예배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날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의식으로 이어져 왔다. 촛불을 밝히고 말씀을 묵상하는 장면은 어둠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소망을 상징한다.


새해에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축복과 평강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기독교의 새해 인사는 결국 함께 걸어가는 삶에 대한 약속으로 귀결된다.

 


불교 

석가모니 열반도(涅槃圖)
석가모니 열반도(涅槃圖). 열반도는 부처가 생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 화면 속 부처는 고요하게 누워 있고, 주변에는 제자들과 중생들이 슬픔 속에 모여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죽음을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불교에서 열반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며,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다. 이 그림은 새해를 더 많이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 시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고요함 속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찾는 장면이다.

“마음이 바르면 새해도 바르다”


불교에서 새해는 날짜보다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 해가 바뀌는 순간보다, 번뇌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려는 결심이 새해를 만든다. 제야의 종을 울리는 전통은 번뇌를 하나씩 덜어내는 상징적 행위다.


불교의 새해 구절에는 욕망을 더하기보다 비움을 강조하는 말들이 많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불교가 전하는 새해의 소망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덜 흔들리는 마음이다.

 


이슬람교
 

오스만 제국 꾸란 사본의 장식 서예
오스만 제국 꾸란 사본의 장식 서예. 이슬람 예술은 인간이나 신의 형상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 대신 정교한 기하학 문양과 아랍어 서예로 신의 질서와 완전성을 표현한다.꾸란 사본의 장식 페이지는 반복과 대칭을 통해 우주의 조화와 규율을 시각화한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질서와 인내다. 이슬람에서 새해는 욕망을 확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절제하며 올바른 길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임을 상징한다.

 

“알라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이슬람교의 새해는 태양력이 아닌 "히즈라력(이슬람력)"을 따른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주(Hijra)를 기점으로 한 이 달력은 새해를 출발과 결단의 시간으로 만든다.


새해에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리고, 자선과 절제를 되새긴다.
“알라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이슬람의 새해는 개인의 소망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올바른 길을 걷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힌두교 

비슈누의 우주적 형상(인도 고전 세밀화)
비슈누의 우주적 형상(인도 고전 세밀화).힌두교 고전 회화에서 비슈누는 세계를 보존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화면 속 비슈누는 인간과 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묘사되며, 그 주변에는 윤회와 우주의 질서를 암시하는 상징들이 배치된다.
이 그림은 삶이 직선이 아니라 순환임을 말한다. 끝은 곧 시작이며, 새해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이어지는 흐름 속의 한 지점이다. 힌두교의 새해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주어진 기회에 대한 책임을 일깨운다.

 

“업을 정화하고, 다시 시작하다”
힌두교의 새해는 지역과 전통에 따라 다양하지만, 공통된 핵심은 정화와 새 출발이다. 집과 몸을 정결히 하고, 등불(디야)을 밝히며 신에게 감사를 올린다. 이는 지난 업(業)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세우는 의식이다.


힌두교 문화권에서 새해는 운명에 맡기기보다 삶의 책임을 자각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을 만든다는 믿음은 새해를 더욱 진지하게 만든다.


  유교 

공자 초상화(명·청대 고화) 공자의 초상화는 대체로 절제된 구도와 담담한 표정으로 그려진다. 화려한 장식도, 극적인 장면도 없다. 대신 차분한 시선과 단정한 자세가 강조된다. 유교에서 새해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이 초상은 새해의 출발점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덕을 쌓고 삶의 태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곧 새해의 의미라는 메시지다.
공자 초상화(명·청대 고화). 공자의 초상화는 대체로 절제된 구도와 담담한 표정으로 그려진다. 화려한 장식도, 극적인 장면도 없다. 대신 차분한 시선과 단정한 자세가 강조된다. 유교에서 새해는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이 초상은 새해의 출발점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덕을 쌓고 삶의 태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곧 새해의 의미라는 메시지다.

 

“새해는 먼저 자신을 바로 세우는 시간”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사상과 윤리 체계로 분류되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새해를 여는 방식에 깊이 스며 있다. 새해는 하늘에 비는 시간이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유교의 새해 정신은 명확하다.
수신제가(修身齊家) — 자신을 닦아 가정을 바로 하고, 사회로 나아간다.
유교가 전하는 새해의 메시지는 화려한 소망보다 책임과 절제의 다짐이다.

 


■ 종교는 달라도, 소망은 하나


기도의 방식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그러나 세계 5대 종교가 새해에 반복해 온 메시지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평화, 성찰, 절제, 그리고 더 나은 삶. 새해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인류가 함께 나누는 가장 오래된 인사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건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종교는 각자의 방식으로 답해 왔다.
조금 더 선하게,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함께.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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