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를 아시나요

신고의 일상화, 시민의식의 성장인가 감시사회의 전조인가
스마트폰 하나로 민원을 제기하고 위법·불편 사항을 즉각 신고하는 시대다. ‘신문고’는 더 이상 관청 앞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교통 위반, 층간 소음, 불법 주정차, 환경 오염까지 일상 속 거의 모든 장면이 신고 대상이 된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시민의식의 성숙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신문고의 일상화는 성장의 징표인 동시에, 사회가 안고 있는 긴장과 균열을 드러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먼저 긍정적 측면을 보자. 신고 문화는 무관심을 깨고 공공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끌어온다. 과거에는 참고 넘어가던 불법과 위험을 기록하고 전달함으로써 행정의 사각지대를 메운다.
교통사고 예방, 생활 안전 개선, 환경 보호 등 실제 성과도 적지 않다. 특히 디지털 신고 시스템은 참여 비용을 낮춰 시민의 접근성을 높였고, 이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토대를 확장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일상화의 그늘도 분명하다. 신고가 협의와 중재를 대체하면서, 공동체의 완충 장치가 약화되고 있다. 이웃 간 대화 대신 ‘즉시 신고’가 먼저 떠오르는 문화는 갈등을 제도 밖에서 풀 기회를 줄인다.
층간 소음이나 주차 분쟁처럼 생활 갈등은 법·행정의 잣대로만 재단되기 어렵다. 신고의 잦은 사용은 상대를 ‘문제 행위자’로 낙인찍고, 관계를 회복 불가능한 대립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감시의 내면화’다. 시민이 서로를 촬영·기록하는 환경이 일상화되면, 공공의 규범은 강화되지만 개인의 사적 영역은 위축된다. 선의의 신고와 과잉 감시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정서적 피로와 불신이 누적된다.
여기에 일부 악성·보복성 신고는 행정력을 소모시키고, 실제로 시급한 사안을 밀어내는 역효과를 낳는다. 신고 건수의 증가는 곧바로 문제 해결의 질적 향상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배경도 짚어야 한다. 경쟁과 불안이 커진 사회에서 규칙은 공정함을 보증하는 마지막 안전장치처럼 여겨진다. 개인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규정에 호소하고, 제도는 이를 수치로 관리한다. 그 결과 시민의식은 책임과 연대보다는 ‘정당한 권리 행사’의 언어로 재구성된다. 이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
해법은 신고를 줄이자는 데 있지 않다. 신고 이전의 대화와 조정이 작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생활 갈등에 대한 중재 창구를 활성화하고, 악성 신고를 걸러내는 장치를 강화하며, 신고 결과의 피드백을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 교육은 ‘신고하는 시민’에서 ‘함께 해결하는 시민’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신문고의 일상화는 시민의식의 성장일 수도, 사회적 신뢰가 약해졌다는 징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이다. 신고가 연대와 회복으로 이어질 때, 그때 비로소 시민의식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