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름다운 인생, 따뜻한 세상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건져 올린 위로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삶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다. 흔히 외로움을 부정적 감정으로만 여기지만, 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가장 근원적인 징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마음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누군가에게 닿고자 몸을 기울이는 존재다. 그런 갈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비로소 외롭다는 감정이 찾아온다. 외로움은 곧 인간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깊은 본능을 지녔음을 알려주는 사인인 셈이다.
철학자들은 외로움을 인간의 조건으로 보아 왔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하며, 근본적으로 혼자인 존재가 세계를 향해 스스로 길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어둠 속 길을 혼자서 걸어갈 때 비로소 인간이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된다고 기록했다. 우리는 누구와 있어도 완벽히 이해받을 수 없고, 또 누구도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없다. 이런 한계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관계를 갈망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손 내밀게 만든다.
문학 속에서도 외로움은 늘 묵직한 주제로 그려진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시인은 외로움이 나를 두드려 별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는 고독 속에서 빛나는 것은 별뿐이라고 했지만, 결국 별들을 헤아리며 마음을 추스르는 행위 자체가 외로움의 성장을 의미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도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한 고독을 피하지 않는다. 고독은 그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창이 된다. 외로움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성숙해가는 과정 속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내부의 숲이다.
그러나 외로움이 반드시 슬픔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을 통과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길을 만들어 낸다.
노년의 한 할머니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깊은 상실감에 빠졌지만,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를 시작하며 ‘나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삶의 온기를 되찾았다.
직장과 인간관계에 지쳐 고립감을 느끼던 한 30대 청년은 주말마다 혼자 하던 산책을 지역 걷기 모임과 함께 나누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를 잘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의 리듬으로 걷고, 걸음 사이사이에 마음을 열어 보이며 외로움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작은 메시지, 동네 카페에서 건네는 짧은 웃음,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외로움의 틈을 메우고 인간을 다시 관계로 이어 준다.
외로움은 우리를 약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더 다가가도록 밀어주는 힘이다.
혼자라는 사실을 인식할수록 우리는 타인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우리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결국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은 외로움이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뜻이다.
외로움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며, 타인을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창이 된다.
외로움을 경험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힘의 근원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외로움을 나누는 순간 삶은 더 넓어지고 더 환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