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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연휴 오후, 열정에 대한 생각

산타뉴스 정현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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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과 사람을 움직이는 진짜 힘

추석 연휴 아내와 딸은 오랜만에 모녀 간 데이트를 나갔다. 나는 책의 원고를 수정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원고 수정에 앞서 차를 한잔 우려서 손에 들고, 문득 열정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당신에게 제품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고객도 마찬가지다"라는 명제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말, "마음을 위대한 일로 이끄는 것은 오직 열정, 위대한 열정뿐이다"가 떠나지 않았다.

 

고요한 오후,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있자니 이 두 문장이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는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또 하나는 철학의 세계에서 건네온 말이지만, 결국 같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정은 전염된다는 것. 그리고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종종 제품의 품질, 마케팅 전략, 가격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간과하곤 한다. 그것은 바로 만드는 사람의 열정이다.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고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아니, 전달되지 않는다. 공허함은 공허함을 낳을 뿐이다.

 

모니터에 띄어진 원고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까. 글을 쓰는 것도 결국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독자라는 고객에게 전달되는 작품. 만약 내가 이 글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독자들은 그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글자 사이로 스며드는 공허함을, 형식만 갖춘 텅 빈 문장들을.

 

디드로가 말한 '위대한 열정'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화려한 포장이나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고요하고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샘물 같은 것이다. 새벽에 눈을 뜨게 만드는 힘,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끈기, 완벽을 향한 끝없는 갈증. 이런 것들이 모여 열정이 된다.

 

차가 식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만나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일에 진정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달랐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랐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만든 결과물이 달랐다.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어 있었고, 그 정성은 고스란히 사용자에게 전해졌다.

 

반대로 열정 없이 만들어진 제품들도 많이 봤다. 그것들은 기능은 갖추고 있었지만, 영혼이 없었다. 마치 숨만 쉬고 있을 뿐 살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런 제품을 사용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나면 망설임 없이 떠난다.

 

창밖으로 초가을의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온다. 아내와 딸이 돌아올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원고를 한 줄 한 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글들에 내 열정이 충분히 담겨 있는가. 독자들이 이 문장들을 읽을 때 무언가 느낄 수 있을까. 그저 지나가는 정보가 아니라, 가슴에 남는 울림이 될 수 있을까.

 

열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것은 성공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삶을 위한 조건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이 무엇을 만들든, 거기에 당신의 열정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것은 세상에 의미 있는 파장을 만들지 못한다. 사람들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열정을 산다. 사람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의 진심과 연결되는 것이다.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이미 식었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조용한 오후, 나 자신과 나눈 이 대화다. 열정에 대한,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한. 원고 수정은 단순한 문장 다듬기가 아니라, 내 열정을 재확인하고 다시 불붙이는 시간이 되었다.

 

디드로의 말처럼, 마음을 위대한 일로 이끄는 것은 오직 열정뿐이다. 그리고 그 열정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당신에게 제품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고객도 그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에게 일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세상도 그것에 응답할 것이다. 그것이 창조의 법칙이고, 삶의 법칙이다.

 

 

정마에Zeongm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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