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정치
사회

한국의 조직 문화는 가속 노화 중

류재근 기자
입력
함께 일하고 싶은 조직의힘
조직에서의 발목 잡기는 큰 병폐다
조직에서의 발목 잡기는 큰 병폐다   AI생성 이미지

• 가속 노화 중인 한국의 조직문화, 하향 평준화의 덫을 풀어야 한다

 

 발목잡기 사회의 현실과 미래 대책


대한민국의 조직문화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인구 고령화만이 아니라, 생각과 문화의 경직성이 깊숙이 스며든 조직의 노화 현상이다. 


수직적 위계, 안정만을 추구하는 관성,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집단주의적 견제심리가 기업과 공공조직 전반에 만연해 있다. 그 결과, 혁신은 사라지고 하향 평준화가 고착되며, 뛰어난 개인은 제도 속에서 소모되고 있다.

 


■ 나서면 찍힌다 - 한국형 발목잡기 문화의 그림자

 

한 대기업 중간관리자 박모(47) 씨는 성과를 내면 축하보다 견제가 먼저 온다고 말한다. 회의 자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괜히 나섰다는 뒷말이 따라붙고, 상사의 스타일을 거스르지 않으려 무난한 선택을 택하게 된다고 했다. 


이른바 나서면 손해 보는 조직구조다.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감사와 규정의 벽, 연공 중심의 인사, 실패에 대한 과도한 책임문화가 공무원들의 창의적 시도를 억누른다. 성과보다 사고를 피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쓰인다.


결국 유능한 인재들은 떠나고, 남은 이들은 평균에 머무르는 게 안전하다는 신호를 공유한다. 
그 결과는 하향 평준화다. 성과보다는 관계, 혁신보다는 체면이 우선하는 문화가 조직 전반을 늙게 만든다.

 


■ 세대 간 충돌과 리더십의 공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MZ세대 직원들은 수평적 소통과 공정한 평가를 원한다. 
반면, 기성세대 관리자들은 여전히 ‘내가 겪은 방식이 정답‘이라는 사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 간극은 단순한 세대차를 넘어, 조직문화의 이중 단층선을 형성한다.


한 공공기관의 20대 직원은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냈지만 너무 앞서간다는 이유로 묵살당했다며 ‘결국 침묵이 생존 전략이 됐다‘고 했다. 


반면 상사들은 요즘 젊은 세대는 책임감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상호 불신이 깊어질수록 조직은 리더십의 방향을 잃는다. 관리자는 후배의 성장을 이끌 멘토가 아닌 감시자로, 구성원은 협력자가 아닌 리스크로 변해버린다.

 


■ 창의성보다 눈치가 승진을 좌우하는 현실

 

한국기업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의 68%가 조직 내 혁신보다 안전한 선택을 택한다고 답했다. 
특히 승진·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관계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심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개인의 창의성과 열정보다는 눈치력과 관계 기술이 성공의 잣대가 된다.
실리콘밸리식 도전정신, 유럽형 수평적 리더십은 구호로만 존재하고, 실무 현장에서는 기획안 검토 중, 리스크 관리 중 이라는 명분 아래 새로운 시도들이 묻혀간다. 결과적으로 조직은 안정을 얻지만 미래를 잃는다.

 


■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의 힘

 

일본의 대표 제조기업 도요타는 최근 역멘토링(Reverse Mentoring) 제도를 도입했다. 젊은 직원이 임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트렌드를 교육하는 방식이다. 
독일의 보쉬는 실수 사례를 공유하는 실패 주간을 운영하며, 실패담 발표에 인센티브를 준다.


이처럼 실패를 허용하는 조직문화는 혁신의 토양이 된다. 반면 한국의 다수 조직은 여전히 실패=낙인이라는 사고에 묶여 있다. 이는 구성원들의 도전 의지를 꺾고, 결과적으로 조직의 노화를 가속시킨다.

 


■ 현실 진단 – 변화보다 통제에 익숙한 시스템

 

현재 한국의 조직은 세 가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1.  연공 중심의 인사 시스템 – 성과보다 근속이 평가의 핵심이다.
  2.   폐쇄적 커뮤니케이션 구조 – 상향 피드백이 불가능하다.
  3.   책임 회피형 리더십 – 실패의 책임은 부하가, 공은 상사가 가져간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혁신이 아닌 현상 유지가 생존의 원칙이 된다. 신입사원조차 입사 1년 만에 조직의 언어에 길들여지는 이유다.

 


■ 학습하는 조직으로의 전환

 

이제 한국 조직문화는 안정적 피라미드에서 순환형 네트워크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성과 중심의 공정한 평가제도가 필요하다. 연공서열보다 프로젝트 중심 평가, 협업성과에 따른 보상이 자리 잡아야 한다.

 

둘째, 실패 친화적 환경 조성이다. 실패를 공유하고 개선안을 찾는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세대 간 상호 멘토링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나이와 직급이 아닌 역량을 기반으로 서로 배우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넷째, 리더십의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하다. 지시형 리더에서 코칭형 리더로, 통제에서 신뢰로의 전환이 이뤄질 때 조직은 다시 젊어진다.

 


■ 함께 일하고 싶은 조직으로

 

조직의 젊음은 나이에 있지 않다. 변화를 수용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발목잡기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혁신의 시대에 스스로를 늙게 만드는 셈이다.


누군가의 성공을 축하할 수 있고, 실패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 함께 일하고 싶은 조직 - 그것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다.

 

 

류재근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