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 같은 학교… 너무 가까운 세상은 아이를 숨 막히게 한다

신도시마다 초등학교가 대단지 한가운데 들어선다.
아침이면 같은 단지의 아이들이 같은 방향으로 줄을 지어 걷고,
놀이터에서도, 학원에서도, 다시 그 얼굴들이다.
통학은 편해졌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라졌다.
■ “같은 동, 같은 반, 같은 학원”… 편리함 속의 피로감
“놀이터만 가도 누구 반인지, 어디 사는지 다 알아요.
그런데 그게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송도의 한 학부모 A씨는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같은 단지에서 같은 학교로 몰리면 생활이 ‘투명한 유리벽’이 된다.
누가 어떤 학원 다니는지, 시험을 얼마나 잘 봤는지,심지어 부모의 말투나 생활습관까지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아이들끼리 생긴 작은 다툼이 금세 어른들의 대화 속으로 옮겨간다.
가까운 이웃이지만, 한 번 틀어지면 피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 작은 오해가 낙인이 되는 마을
문제는 이런 구조에서 한 아이, 한 가정이 낙인을 받게 되었을 때다.
“문제아”, “예민한 집”, “불편한 부모”라는 말은 입 밖에 한 번만 나와도 단지 전체를 돌아다닌다.
단지와 학교가 뒤섞인 작은 사회에서는,한 번의 실수나 오해가 평생의 꼬리표가 된다.
낙인은 아이의 정서를 짓누른다.
학교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아이는 위축되고, 또 다른 아이는 방어적으로 변한다.
부모는 이웃을 피하게 되고, 가족은 점점 고립된다.
결국 한 가정의 상처가 마을 전체의 침묵으로 번진다.
■ 조기 경쟁과 비교의 습관
같은 단지의 아이들이 같은 반, 같은 학원, 같은 친구를 공유하면서 ‘비교’가 생활의 기본 언어가 된다.
“쟤는 이번에 몇 점 받았대?”, “그 집은 어떤 선생님이래.”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관찰하고, 부모는 그 비교의식 속에서 불안해진다.
전문가들은 이를 “조기 경쟁형 공동체”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사회성을 배우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 결과, 공감보다는 경계, 연대보다는 피로가 남는다.
■ “적당히 모르는 관계가 아이를 살린다”
심리학자 이 모 교수는 “공동체는 가까워야 하지만, 너무 가까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서로 다른 환경의 친구를 만나고,
조금은 모르는 이웃이 있어야 아이가 스스로를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지나친 일체감은 결국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죠.”
중·고등학교처럼 일정 단지 이상은 인근 학교로 분산 배정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통학 거리는 유지하되, 학교 공동체와 생활 공동체를 분리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아이들이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부모들도 비교와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한 이웃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따뜻한 공동체는 서로의 삶을 다 아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주는 곳이다.
한 아이가 실수했을 때 “괜찮다”고 말해줄 여유,한 가정이 어려움을 겪을 때 조용히 기다려줄 거리감,그게 진짜 공동체의 품격이다.
같은 단지, 같은 학교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적당한 거리’—
그곳에서 아이들은 비교가 아닌 이해를 배우고,경쟁이 아닌 공존을 배운다.
산타뉴스는 그 작은 거리 속의 따뜻함을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