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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의 현실과 과제

산타뉴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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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의 문제점은 없는가
진정한 대학생 지역인재 채용은 ‘사람의 뿌리’에서 찾아야 한다                               AI생성 이미지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은 지역 균형 발전과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한 대표 정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시행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제도는 형식적으로 유지되는 반면 실질적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지역 청년들이 공공기관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지역인재 채용 확대의 명분과 현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의 인재가 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2015년부터 지역인재 채용을 의무화했다. 이전에는 자율 권고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이전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인원 중 30% 이상을 지역대학 출신 인재로 채용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한국전력공사(나주), 국민연금공단(전주), 한국수력원자력(경주) 등 지방 이전 기관들은 매년 지역대학 졸업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해왔다. 


2024년 기준 전체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률은 평균 35% 수준으로 정부 목표를 상회했다.

그러나 수치 속엔 그림자가 있다. 지역대학 출신이라는 기준이 실제로는 해당 지역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의미할 뿐, 그가 해당 지역 출신인지, 지역사회에 기여할 의지가 있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수도권 출신 학생이 지방대학을 졸업해 지역인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제도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지역대학의 불균형과 채용 기회의 편중

 

문제는 또 있다. 공공기관이 몰려 있는 일부 도시(세종, 혁신도시 등) 주변 대학에 채용 기회가 집중되는 반면, 다른 지방 대학은 지역인재임에도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세종·대전 지역의 공공기관은 충청권 대학 출신을, 전주 혁신도시 기관은 전북권 대학 출신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경남, 강원, 충북처럼 혁신도시 규모가 작은 지역의 대학생들은 응시 기회조차 제한된다.한 지방대 4학년 김모 씨는 ‘지역인재 채용이라지만 실제로는 혁신도시 주변 대학 학생들이 혜택을 본다‘며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새 불균형을 만든다고 토로했다.

 


■ 기업 입장에선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 부족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도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지역대학 졸업생 중 일부는 전공과 업무가 맞지 않거나, 관련 자격증·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기관은 의무 채용 비율을 맞추기 위해 최소 기준만 충족한 지원자를 뽑아야 할 때도 있다.


결국 신입 직원의 실무 적응이 늦어지고, 교육비용이 늘어나며, 조직 내 성과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이에 일부 기관은 비공식적으로 채용은 하되 중요 부서에는 배치하지 않는다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 지방청년의 탈(脫)지역화 문제

 

또 다른 문제는 지역인재가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에 입사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도권 본사로 전보되거나, 경력을 쌓은 뒤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근본적으로 지방의 정주 여건, 문화·교육·주거 인프라 부족에서 비롯된다.
결국 지역인재 채용이 지방 청년의 수도권 진출 통로로 전락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 채용에서 ‘정착’으로

 

전문가들은 단순히 채용 비율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채용 이후의 정착 지원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지역인재에게 장기근속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 주택 지원, 승진 가산점, 가족 정착 지원 등을 제공하면 이탈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대학과 공공기관 간 맞춤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현장 실습·인턴십·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대학 교육이 실제 기관 업무와 연계된다면,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셋째, 지역 간 형평성을 위해 권역별 통합 채용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 특정 지역에만 기회가 집중되지 않도록 채용 범위를 광역 단위로 넓히는 것이다.

 


■ 진정한 지역균형은 ‘사람의 뿌리’에서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취업 기회 제공이 아니다. 지역의 인재가 그 지역에서 성장하고, 정착하며, 새로운 일자리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선순환을 구축하는 데 있다.


채용은 출발점일 뿐, 그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생활 인프라와 미래 비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1월의 낙엽처럼 사람도 뿌리를 내려야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 제도가 진정한 의미의 균형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제도의 숫자보다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필요하다.

 

류재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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