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SRT 통합 무엇이 문제인가

KTX·SRT 통합, 무엇이 문제인가
선진국 철도 민영화와 경쟁 사례로 본 한국 철도의 미래
고속철도 KTX와 SRT의 통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일부 공공기관은 중복 투자 해소와 운영 효율성 제고를 명분으로 통합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와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이 논의는 단순한 조직 개편 이상의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KTX는 코레일이, SRT는 SR이 각각 운영한다. 두 체제는 노선·요금·서비스 측면에서 제한적이지만 실질적인 경쟁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 경쟁은 단순한 이원화가 아니라, 독점 구조였던 한국 철도에 긴장과 비교 기준을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합의 가장 큰 문제는 경쟁 상실이다. 철도는 자연독점 성격이 강한 산업이지만, 운영 단계에서의 제한적 경쟁은 서비스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SRT 도입 이후 고속철도 요금 할인, 좌석 운영 개선, 고객 응대 서비스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통합은 이러한 비교 가능한 기준을 제거함으로써 다시 독점 체제로 회귀할 위험을 안고 있다.
해외 사례는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영국은 1990년대 철도 민영화를 통해 운영과 시설을 분리하고 복수 운영사를 경쟁시키는 구조를 도입했다. 비록 초기에는 안전 문제와 요금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겪었지만, 현재는 노선별 경쟁과 공공 규제를 결합한 혼합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완전한 통합보다는 경쟁과 강한 공공 감독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일본은 또 다른 사례다. 국철을 해체해 탄생한 JR그룹은 지역별 분할 민영화를 통해 서비스 품질과 재무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도카이·동일본·서일본 JR 간의 간접 경쟁은 기술 혁신과 정시성 향상을 이끌었다. 일본의 고속철도 신칸센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분권적 운영 구조가 있다.
독일의 도이체반과 프랑스의 SNCF 역시 완전 통합보다는 단계적 경쟁 도입을 택했다. 특히 프랑스는 최근 고속철도 시장에 민간 운영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요금 인하와 서비스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선진국 다수는 통합이 효율이라는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철도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할까. KTX·SRT 통합이 아니라, 공공성을 전제로 한 관리형 경쟁 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선별 복수 운영, 공동 발권·환승 시스템, 안전·요금에 대한 국가 규제 강화가 병행된다면 경쟁과 공공성은 양립 가능하다. 문제는 구조가 아니라 설계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지역 균형, 국민 이동권, 탄소 감축을 동시에 책임지는 사회 기반 시설이다.
통합 논의는 비용 절감이라는 숫자 논리를 넘어, 국민 편익과 장기적 철도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경쟁을 없애는 통합이 아니라, 경쟁을 관리하는 국가의 역할이 지금 한국 철도에 요구되는 진짜 개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