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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권력의 부상, 민주주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산타뉴스 이성로 기자
입력
플랫폼이 만든 새로운 권력 지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회의 권력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에는 정부가 법과 제도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기술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오늘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사회 인프라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정부만이 권력을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 구글과 메타 같은 초국적 기업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준(準)정부’의 위치에 올라섰다.

 

이들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하여 광고, 여론 형성, 정보 전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관여한다. 방대한 인프라와 자본을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면서, 권력은 소수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그 결과 민주적 통제의 공백 속에서 ‘디지털 권력’이 출현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감시와 통제의 이중성

 

디지털 권력은 또 다른 차원에서 정부의 통치 방식도 바꾸었다. 

인공지능 기반 감시 카메라,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회 신용 평가, 그리고 휴대전화 위치추적 같은 기술은 국가 권력이 시민을 관리하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중국의 안면인식 카메라나 미국의 NSA 비밀 감청 프로그램은 기술이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를 가리지 않고 ‘감시의 유혹’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 체제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알고리즘이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하면 소수자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고, 자동화된 의사결정은 오류를 바로잡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시민의 운명이 ‘보이지 않는 코드’에 의해 좌우되는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다.

 

알고리즘과 공정성의 위기

 

많은 정부와 공공기관은 행정 효율화를 위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범죄 예측, 양형 판단, 복지 수급 자격 심사 등에서 데이터 기반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지만,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잘못된 알고리즘 판정으로 수많은 시민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는 ‘기계적 합리성’이 반드시 ‘사회적 정의’와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럽연합의 시도와 한계

 

디지털 권력의 위험을 제도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시도는 유럽연합(EU)에서 이뤄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디지털서비스법(DSA), 디지털시장법(DMA), 그리고 인공지능법(AI Act) 등은 플랫폼 기업과 AI 활용에 대한 강력한 규제 틀을 마련한 대표적 사례다. 불법 콘텐츠 제거, 알고리즘 공개, 독점적 시장 지배 제한 등은 모두 디지털 권력을 사회적 규범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은 법·제도의 근본적 한계로 남는다. AI Act 논의 도중 초거대 생성형 AI가 등장했듯, 새로운 기술은 입법 과정을 앞지르며 지속적으로 공백을 만들어낸다. 또한 글로벌 기업을 감독하고 실제 집행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회원국 간의 협력과 집행 기관의 역량 부족이 문제로 지적된다.

 

공동 거버넌스의 필요성

 

이제 디지털 권력의 균형을 잡는 일은 정부 혼자 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기업은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지켜야 하고, 정부는 이를 강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시민사회는 감시자와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결국 민주적 거버넌스는 국가·기업·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시민단체의 감시 활동, 국제 언론의 탐사보도, 디지털 권리 운동은 모두 이러한 공동 통치의 사례다. 공공성과 투명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트레이드오프를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결론: 기술은 중립이 아니다

 

디지털 권력은 증기기관, 원자력처럼 인류의 향방을 바꾸는 거대한 에너지다. 그것이 감시와 통제의 도구가 될지, 아니면 모두의 번영을 돕는 공공재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사회적 가치와 원칙을 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과정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성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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