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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업 자녀입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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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2030의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등장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하라는 재촉이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독립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인지도 모른다.

나는 ‘전업 자녀’입니다

 

2030 취업난에 독립 대신 가사 전담 - 집안일 하며 부모에게 ‘월급 50만원’

 

“제 직업은 지금 전업 자녀입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대신 아침부터 청소와 빨래를 하고 장을 본다. 저녁이면 부모의 퇴근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린다. 그리고 부모에게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받는다. 취업난과 높은 주거비 속에서 부모의 집에 머물며 가사노동을 맡는 이른바 ‘전업 자녀’가 2030세대의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집이 새로운 ‘직장’이 됐다

 

최근 보도된 26세 취업준비생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오전에 청소와 빨래를 끝낸 뒤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부모의 식사를 준비한다. 이렇게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부모에게 매달 50만원을 받는다.

 

‘전업 자녀’라는 표현은 2023년 중국에서 ‘취안즈얼뉘(全職兒女)’라는 이름으로 확산됐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 속에서 부모와 함께 살며 청소와 식사 준비, 돌봄 등을 담당하고 생활비를 받는 청년들을 가리킨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청년 취업자는 46개월째 감소

 

그 배경에는 얼어붙은 청년 고용시장이 있다. 2026년 8월 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4만3천 명 줄어 46개월 연속 감소했다. 청년 고용률도 44.1%에 머물렀다.

 

독립의 문턱도 높다.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의 54.4%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월세와 관리비, 식비 등 높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본가살이’는 단순한 의존을 넘어 하나의 경제적 선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캥거루족과는 조금 다르다

 

전업 자녀는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경제적 지원만 받는 기존의 ‘캥거루족’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부모가 주거와 생활비를 제공하는 대신 자녀는 청소·요리·빨래는 물론 병원 동행과 가족 돌봄까지 담당한다.

 

전모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저성장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이 ‘무직자’라는 자괴감 대신 가사 담당자라는 역할을 통해 자존감을 지키려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전업 자녀 생활이 길어지면서 구직을 포기하고 사회적 관계마저 끊어진다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이 고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업 자녀’를 탓하기 전에

 

‘월급 50만원을 받으며 부모 집에서 사는 청년.’ 겉으로만 보면 편안한 삶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취업문을 두드려도 좀처럼 열리지 않는 노동시장과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미래가 놓여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아직도 부모에게 의지하느냐”고 묻기 전에 “왜 청년들이 집 밖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집안일을 하며 받는 50만원이 청년의 마지막 월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집이 영원한 직장이 아니라 다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이 되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하라는 재촉이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독립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인지도 모른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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