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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다문화, 그 이름의 온기: 보고 싶다 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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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다문화, 그 이름의 온기: 보고 싶다 케이트

성연주 기자
입력

요즘 한국 사회에는 다문화가정이 점점 늘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 출신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정착하며 귀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따뜻하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대우 속에서,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살아간다.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뿌리내린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름’에 낯설어하고 경계하는 모습이 많다.
 

그럴 때면 외국인이었던 나의 지난날이 떠오른다. 낯선 땅에서 느꼈던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한 따뜻한 사람, 케이트. 그녀를 떠올리면 ‘다름’은 경계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 시절,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공공도서관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무료 영어 회화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케이트를 만났다. 뽀얀 피부에 뿔테 안경, 따뜻한 미소를 지닌 스물다섯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성. 그녀는 유난히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쓸기 한참 전부터 말이다.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이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자라 성실하게 삶을 일궈낸 그는, 지역의 꽤 괜찮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케이트는 남편을 위해 떡, 김치, 된장찌개, 냉면, 김치라면까지 직접 만들어 주었다. 현지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들을 일일이 찾아 정성껏 준비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 한국 식당에서 친정어머니와 감자탕을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땐, 괜히 울컥했다. 그녀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나 역시 그녀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툰 영어와 짧은 단어들로도 충분히 마음을 나눴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이 덕분에 영어 실력은 그리 늘지 않았지만, 마음은 매일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트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비밀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이후 그녀는 점점 수척해졌고, 어느새 더 야위어 있었다. 마침내,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전해진, 믿기 어려운 기쁜 소식. 임신했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적 같은 순간.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이 많았던 그녀에게 신이 준 축복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남편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사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작별했다. 어느새 십여 년이 훌쩍 지났고, 그녀와 남편의 이름조차 흐릿해졌지만, 그 시절의 따뜻한 기억만큼은 여전히 선명하다. 지금쯤이면 그녀도 학부모가 되었으려나.


나는 지금도 ‘다름’을 마주할 때면 케이트를 떠올린다. 다문화는 멀리 있는 말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웃이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척이 아닌 이해, 두려움이 아닌 다가감이다.


보고 싶다, 케이트. 당신의 미소와 따뜻한 진심이 지금도 내 마음을 적신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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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