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프라이드치킨 흰 수염 신사, 커널 샌더스…1009번째 도전 끝에 세계 브랜드를 만들다
![커널 샌더스(Colonel Sanders, 한국어: 샌더스 대령)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 1890년 9월 9일~1980년 12월 16일)는 KFC를 창업한 미국의 기업인으로, KFC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그의 사진은 KFC 매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때때로는 KFC를 대신하는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사진제공 위키백과]](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728/1785238657375_999252064.jpg)
인생은 때로 모든 것을 잃은 뒤에 다시 시작된다.
KFC 창업자 커널 샌더스는 65세에 식당이 문을 닫으며 사실상 빈손이 됐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사회보장 수표 100달러와 수십 년 동안 다듬어 온 프라이드치킨 조리법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였지만, 그는 마지막 도전을 선택했다.
1890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난 커널 샌더스의 본명은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며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어머니 대신 요리를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농부, 철도 노동자, 보험 판매원, 증기선 선원 등 수많은 직업을 거쳤고,
그 경험들은 훗날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밑거름이 됐다.
40세가 되던 무렵 켄터키주의 한 주유소에서 여행객들에게 직접 만든 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작은 식당으로 성장했고, 더 빠르고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는 압력튀김 조리법을 개발하며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고, 결국 식당은 파산했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사업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대부분이라면 그 자리에서 멈췄을 상황이었다.
샌더스는 자신의 치킨 레시피를 들고 미국 곳곳의 식당을 찾아다녔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자동차에서 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계약을 제안했지만 거절은 반복됐다. 널리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그의 제안은 1,000회가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의 거절이 끝이 아니라 다음 문을 두드릴 이유라고 믿었다.
마침내 그의 조리법을 받아들이는 식당이 나타났고,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사업은 빠르게 확산됐다. 이후 KFC는 세계 수백 개 국가와 지역으로 진출하며 가장 널리 알려진 외식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사업이 안정된 뒤에도 그는 브랜드의 얼굴로 직접 세계를 다니며 고객을 만났다.
흰색 양복과 검은 리본 타이는 그의 상징이 됐고, 브랜드보다 사람을 먼저 기억하게 만드는 경영 철학을 보여줬다.
그는 사업 수익의 일부를 장학사업과 자선재단 설립에도 사용했다.
교육과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을 이어가며 기업의 성장은 사회와 함께해야 한다는 뜻을 실천했다.
커널 샌더스의 삶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그는 가장 늦었다고 여겨지는 나이에 가장 큰 도전을 시작했고,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치킨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삶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계획보다 실패가 먼저 찾아오는 날이 있다.
나이, 형편, 환경은 출발선을 바꿀 수는 있어도 마지막 결승선을 정하지는 못한다.
커널 샌더스는 그 사실을 자신의 인생으로 보여줬다.
"성공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도 없다." — 커널 샌더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