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쏠림 벗어나 이공계로… 그러나 지방 격차는 여전하다
2026학년도 대학 수시모집 경쟁률이 공개되면서, 의대 일변도의 쏠림 구조가 서서히 균열을 보이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이공계 계약학과의 약진이다. 산업 현장과 직결된 ‘채용 연계형 학과’에 수험생들의 지원이 몰리면서 새로운 진학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종로학원 집계에 따르면, 전국 대기업 계약학과(일반대 기준) 14곳의 평균 경쟁률은 20.7대 1. 모집인원 429명에 무려 8,892명이 몰렸다. 특히 서강대 SK하이닉스 계약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48.5대 1로 전국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업과 협력하는 고려대, 한양대의 반도체공학과까지 합치면 지원자가 전년 대비 22%나 늘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손잡은 가천대 클라우드공학과도 37.6대 1, 삼성SDI와 연계된 성균관대 배터리학과는 신설 첫해 17.9대 1로 출발했다. 현대차와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이 연계한 계약학과 역시 두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며 치열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스펙 경쟁’이 아니다. 반도체·배터리·모빌리티·클라우드·정보보호 등은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산업이다. 수험생들이 안정적 직업으로만 몰려들던 의대 쏠림에서 벗어나, 산업 전망과 기술 성장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한 교육 평가는 “의사라는 직업 안정성보다, 산업 현장에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미래 먹거리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문제는 ‘격차’다. 수도권과 과학기술특성화대(UNIST, POSTECH 등)는 높은 경쟁률과 지원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방권 대학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전북대, 충남대 등 주요 거점국립대의 계약학과는 평균 경쟁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일부 조기취업형 계약학과는 2~5대 1 수준에 불과해, 수도권과 대기업 협력 학과에 몰리는 열기와는 대조적이다. 지방권에서는 여전히 의·치의·간호 계열이 최강세를 유지하고, 첨단 계약학과는 상대적으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역 불균형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지방 대학이 아무리 계약학과를 열어도, 수도권 대기업과의 직접적 연계 없이는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결국 우수 인재는 수도권으로 흡수되고, 지방권 대학은 산업 수요와 교육 기회에서 동시에 뒤처지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따라서 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 대학이 지역 기업 및 연구기관과 함께 매력적인 계약학과를 운영할 수 있도록 산학연 협력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 산업단지·혁신도시와 연계된 ‘지역 특화 계약학과’ 모델이 더 확산돼야,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고 전국적으로 인재 풀을 확장할 수 있다.
의대 지원자가 폭증하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반도체와 배터리, 클라우드로 시선이 이동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변화가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한국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수도권과 지방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균형 전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