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 수출 날개를 달다

한국 수출 ‘7000억달러 시대’ 개막 — 77년 축적의 결과, 세계 6번째 위상
우리나라 연간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약 1011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 기준으로 2025년 누적 수출이 7000억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주요국 가운데서는 미국·독일·중국·일본·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6번째로 ‘7000억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기록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수출액이 1900만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이 고도성장·산업 고도화·글로벌 공급망 편입을 거치며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 결과다.
특히 연간 수출은 1995년 1000억달러, 2004년 2000억달러, 2006년 3000억달러, 2008년 4000억달러, 2011년 5000억달러, 2018년 6000억달러를 차례로 넘긴 뒤 7년 만에 7000억달러를 달성했다.
반도체 ‘원엔진’에서 산업 다변화로…AI 수요가 뒷심
성과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2025년 수출은 AI 투자 확대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수요가 강해지며 반도체가 견인했고, 12월에도 반도체가 큰 폭으로 증가하며 연간 기록을 확정지었다. 다만 수출 현장은 ‘반도체 원엔진’에만 기대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자동차·선박 등 전통 주력 품목이 버팀목 역할을 했고, 바이오·IT기기, 식품·화장품 같은 소비재 수출도 새로운 축으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출 시장의 지형도도 변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수개월간 수출 증가 흐름 속에서 대미·대중 의존도를 완화하고 아세안, EU 등으로 판로를 넓히는 시장 다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충격 속에서 만든 기록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악화된 통상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2025년은 보호무역 기조, 관세 압박 등 대외 변수가 컸지만 수출이 연말로 갈수록 회복 탄력을 보이며 첫 7000억달러를 달성했다는 게 정부·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2026년 ‘완만한 증가’ vs ‘리스크 확대’ — 핵심은 통상·AI·공급망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성장의 지속 가능성이다. 무역업계에선 2026년 수출이 7000억달러대 초반을 유지하며 소폭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반도체의 완만한 개선과 IT 수요를 근거로 2026년 수출을 7110억달러 안팎으로 내다봤다.
반면 리스크 요인도 선명하다. 미국발 관세·통상 규범 변화가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핵심 품목의 비용 구조를 흔들 수 있고, 중국 경기·글로벌 금리·원자재 가격, 탄소국경조정(CBAM) 등 규제 비용도 부담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반도체를 둘러싼 관세 논의가 재점화되며 관세가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수출 7000억달러 달성을 도착점이 아니라 새 출발선으로 본다. AI·첨단제조 경쟁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특정 품목·특정 시장 쏠림을 줄이는 구조 전환(서비스 수출, 콘텐츠·K-소비재 고부가화, 중견·중소 수출 저변 확대)이 병행돼야 7000억달러 시대가 지속 가능한 7000억달러로 굳어진다는 주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