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뉴스/오늘 산타
산타 스타

BTS와 ARMY로 보는 팬덤 문화 – 제10부

산타뉴스 남철희 편집장
입력
제10부 | 엘비스와 비틀스 그리고 BTS

 

산타뉴스  |  기획연재


세계 대중문화가 놓은 다리와 새로운 팬덤의 탄생


한 사람의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처음 이 질문을 들으면 조금 과장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노래 한 곡이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없고, 가난을 당장 없앨 수도 없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음악은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은 서로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취향이었다.


“나는 이 가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도 이 가수를 좋아한다.”가 되었다.
그 작은 변화가 훗날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우리가 오늘 ‘팬덤문화’라고 부르는 현상도 어쩌면 그렇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음악이 잇는 시대와 세계
 ‘엘비스→ 비틀스 → BTS’                AI생성 이미지


엘비스, ‘팬’이라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들다


1950년대 미국. 한 젊은 가수가 등장했다. Elvis Presley.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가수 한 명의 등장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과 춤, 옷차림과 무대는 젊은 세대에게 강렬한 자극이었다.
젊은이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음반을 사고 사진을 모으고 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날 너무나 익숙한 ‘스타와 팬’이라는 관계가 대중문화의 중요한 풍경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팬은 주로 한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이었다. 

나는 엘비스를 좋아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직 ‘우리’라는 공동체는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다.


비틀스, 팬을 하나의 세대로 만들다


1960년대. 영국 리버풀에서 네 명의 젊은이가 등장했다. The Beatles.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비틀스는 음악의 역사를 바꾸었지만 그 영향은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비틀스의 음악을 들었다. 텔레비전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공연을 기다렸고, 같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팬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비틀스를 좋아한다’에서 ‘우리도 비틀스를 좋아한다’로 바뀌었다. 개인의 취향이 공동체의 정체성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팬은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팬’에서 ‘팬덤’으로


여기에서 우리는 ‘팬덤’이라는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팬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팬덤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공통의 언어를 만들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 정보를 나누고, 때로는 함께 행동할 때 비로소 하나의 공동체적 성격이 생긴다. 즉, 팬은 개인이지만 팬덤은 관계다. 그리고 관계가 반복되면 문화가 된다. 이것이 ‘팬’과 ‘팬덤문화’ 사이에 놓인 중요한 차이다.


인터넷이 팬덤의 국경을 없애다


과거의 팬들은 물리적으로 만나야 했다. 같은 지역에 살거나 같은 공연장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인터넷과 SNS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팬과 미국의 팬이 연결되었다. 일본의 팬과 브라질의 팬이 대화를 나눴다.
서로 언어가 달라도 번역을 통해 소통할 수 있었다.이제 팬들은 단순히 스타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정보를 모으고, 번역하고, 영상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고,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팬덤의 중심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가 팬을 모으는 시대에서 팬들이 스스로 연결되는 시대로.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BTS가 등장했다.


BTS, 팬덤의 새로운 장을 열다


BTS.
BTS가 처음부터 세계적인 스타였던 것은 아니다. 작은 기획사에서 출발한 일곱 명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불안과 좌절, 청춘의 고민,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 노래했다.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ARMY였다.


처음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팬들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결은 공연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기부가 되고, 봉사가 되고, 교육이 되고, 환경보호와 재난구호가 되었다.
9부에서 살펴본 것처럼 BTS가 던진 메시지가 팬들의 행동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26년 LA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2026년 9월. BTS가 4년 9개월 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다시 찾았다.
7만 석 규모의 경기장이 ARMY로 가득 찼다. 그런데 이날 공연장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관객의 숫자가 아니었다.
태극기였다. 한복을 입은 팬들이 있었고, 태극기를 든 팬들이 있었으며, 직접 만든 기념품을 나누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공연장에서는 수많은 ARMY가 한국의 전통 민요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MBC는 이를 ‘7만 아미의 아리랑 떼창’으로 전했다. 

LA시는 BTS의 네 차례 공연이 열리는 한 주를 아예 ‘BTS Week’로 선포했고, 시청 외벽도 새 앨범 ‘ARIRANG’을 상징하는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이것은 단순한 콘서트 장면일까. 미국에서 한국의 노래를 함께 부르다
미국의 한 대형 경기장. 7만 명의 사람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부른 노래는 한국의 전통 민요였다.


아리랑.
아리랑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과 애환을 담아온 노래다. 

그 노래가 이제 세계인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고 있다.


스탠퍼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났다.
BTS의 ‘ARIRANG’ 투어 당시 약 15만2천 명이 사흘간 공연장을 찾았고, 

현지에서도 ‘아리랑’ 떼창과 태극기 물결이 화제가 됐다.


이것은 단순히 K-POP이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세계로 건너갔고, 그 음악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다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한국어와 음식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LA 현지 팬도 BTS를 좋아하면서 한국 문화와 언어,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음악이 문화를 옮기는 다리가 된 것이다.


엘비스에서 BTS까지


여기에서 우리는 대중문화의 긴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다.
엘비스는 스타와 팬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비틀스는 그 관계를 하나의 세대문화로 확장했다. 인터넷은 그 문화를 국경 없는 공동체로 연결했다.
그리고 BTS와 ARMY는 그 공동체가 문화와 사회적 행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역사는 ‘누가 가장 유명한 스타였는가’의 역사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팬덤의 진짜 힘은 숫자가 아니다. 팬덤의 힘을 흔히 숫자로 이야기한다.
몇 명의 팬이 있는가. 공연장에 몇 명이 모이는가. 음반을 얼마나 판매했는가.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주는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고, 때로는 낯선 사람을 돕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그 팬덤은 단순한 소비집단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팬덤을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팬덤은 같은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같은 의미를 공유하면서 서로를 발견하는 공동체일 수 있다.


‘팬덤문화’라는 말이 필요한 이유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가 왜 ‘팬덤문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한 사람이 BTS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BTS를 매개로 만나고,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만들고, 서로를 돕고, 기부하고, 봉사하고, 한국 문화를 배우고,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면 그것은 개인의 취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팬이 모이면 팬덤이 된다. 팬덤이 관계를 만들면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가 행동을 만들면 문화가 된다. 그리고 그 문화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BTS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LA의 7만 명이 왜 태극기를 들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아리랑’이라는 한국의 노래를 왜 함께 불렀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왜 BTS를 좋아하는 것이 한국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을까.
왜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졌을까.
어쩌면 답은 음악에만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에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존재를 만나면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제 팬덤을 넘어 인간을 바라볼 때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BTS를 넘어선다.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간처럼 대화하고 반응하는 휴머노이드가 우리의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기계가 인간을 위로해주는 시대에 인간과 인간은 서로를 얼마나 위로하고 있을까.
BTS와 ARMY가 보여준 현상은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작은 실험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 연결이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다시 선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팬덤문화가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중요한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세계 대중문화가 놓은 다리


엘비스에서 시작된 열광. 비틀스가 넓힌 세대의 연결. 인터넷이 국경을 허문 팬덤.
그리고 BTS와 ARMY가 보여주는 새로운 공동체. 그 긴 시간 동안 하나의 다리가 놓여왔다.
음악과 사람 사이의 다리.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 사람들은 서로를 발견했다.


2026년 LA에서 7만 명의 ARMY가 태극기를 들고, 한국의 ‘아리랑’을 함께 부른 장면은
그 다리의 현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70년 전 미국의 한 젊은 가수를 바라보던 팬들의 열광은 이제 미국의 한복판에서 세계인이 한국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인기의 역사가 아니다.
문화가 국경을 넘어 사람을 연결해 온 역사다.


그리고 다음 질문
그렇다면 이제 더 깊은 질문이 남는다. 왜 사람은 음악에 감동하는가.
왜 어떤 노래 한 곡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의 마음속에 남는가.
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며 친구가 되는가.
그리고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까지 사랑하게 되는가.
어쩌면 그 답은 음악보다 더 오래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래 연결되기를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엘비스도,
비틀스도,
BTS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은 다시 서로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팬덤을 넘어 ‘인간다움’이라는 더 깊은 질문으로 들어간다.
AI가 인간의 말을 대신하고, 인간의 외로움까지 달래려는 시대에 과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연결은 무엇인가.


다음 편에서는 바로 그 질문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이번 10부는 9부의 ‘씨앗 → 숲’에서 10부의 ‘다리’로 비유를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9부가 “선한 영향력이 어떻게 자라는가”였다면, 10부는 “그 영향력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가 되었는가”입니다.
그리고 11부부터는 "BTS 자체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랑, 외로움, AI 시대의 인간다움’으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갑니다.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