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유언을 품고… 영등포역 자선냄비에 남겨진 610만원
![1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시민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5일 서울 영등포역에 한 여성이 넣고 간 기부금이다. [사진제공 구세군]](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219/1766078575629_153732147.jpg)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역 앞,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 한 60~70대 여성이 다가와 현금 61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최근 별세한 언니의 유언에 따라 유산 일부를 불우이웃 돕기에 쓰고 싶다는 뜻을 담아 봉투를 남겼다. 현장은 조용했고,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이날 자선냄비 설치를 돕던 구세군 영등포교회 봉사자들은 여성이 짐을 함께 들어주자 고마움을 전했다. 설치가 끝나자 그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처음엔 동전 묶음으로 여겼지만, 봉투 안에는 띠지로 묶인 5만원권 다발이 들어 있었다. 몇 차례에 걸쳐 돈을 넣은 그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봉사자에 따르면 여성은 꾸밈없는 차림이었다.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를 질끈 묶고,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소박했다. 외모로 판단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는 게 봉사자의 말이다.
기부금은 이후 구세군대한본영으로 전달됐다. 봉투 속에는 작은 메모가 함께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별세한 언니의 유산 일부를 불우이웃 돕는 데 기부합니다.”
홍봉식 구세군대한본영 커뮤니케이션스 국장은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이웃사랑으로 승화시킨 마음을 담아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928년 국내에 처음 도입돼 올해로 97년째 이어지고 있다. 겨울철 거리 모금의 상징이지만, 봉사 인력 부족은 해마다 반복되는 과제다. 영등포 일차에서도 지역 교회 성도들이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씩 순번을 나눠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방학을 맞은 대학생 한 명이 40차례 이상 봉사에 나선 사례도 있었다.
이번 기부는 특정 캠페인이나 홍보와 무관했다. 개인의 선택과 가족의 약속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분명하다. 기부 목적도 명확하다. 불우이웃 지원이다. 구세군은 해당 성금을 겨울철 취약계층 생계·돌봄 지원에 사용할 예정이다.
연말이면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거리를 채운다. 전자결제가 늘었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직접 발걸음을 멈춰 마음을 남긴다. 그날 영등포역 앞에서도 종은 평소처럼 울렸고, 다만 봉투 하나가 조용히 겨울을 데웠다.
이름 없는 기부는 숫자보다 오래 남는다.
610만원은 금액이자, 한 가족의 기억이다.
누군가의 마지막 바람이 이웃의 하루를 지탱한다.
연말의 나눔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멈춰 서서, 한 번 더 바라보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