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던진 책 한 권이 특수 상해가 된다

“끝나지 않는 학폭 재판” — 교실은 법정이 되었다
서울행정법원에 학교폭력 전담 재판부가 기존보다 두 배로 확대되면서 교육 현장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 건수 역시 최근 4년 사이 78% 급증했다.
과거의 학교폭력이 주먹다짐이나 금품 갈취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SNS 조롱, 단체 채팅방 따돌림,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포까지 형태가 복잡하고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사소한 다툼조차 형사·행정 소송으로 이어지는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학생이 장난처럼 던진 책에 친구가 다치면서 ‘특수상해’ 논란으로 번진 사례처럼,
교내 갈등이 곧바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교사들은 “생활지도보다 증거 확보와 민원 대응이 더 중요해진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최근 학폭은 물리적 폭력보다 관계 파괴형 폭력이 더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정 학생을 단체 채팅방에서 조롱하거나, SNS에 외모 비하 게시물을 올리고, 친구 사진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을 퍼뜨리는 식이다.
피해 학생들은 교실 밖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공격이 계속되면서 극심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예전에는 학교가 끝나면 갈등도 어느 정도 멈췄지만 지금은 밤새 휴대전화로 공격이 이어진다”며 “학생들이 잠을 못 자고 등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환경이 학폭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목격자가 제한됐지만 지금은 영상과 게시물이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피해가 영구적으로 남는다.
한번 퍼진 영상은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고, 피해 학생은 전학이나 졸업 이후에도 흔적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학폭 대응 체계 역시 갈수록 ‘사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가해·피해 학생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고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생활기록부 기재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학폭위를 사실상 “입시 전쟁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인다.
교육계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학생들의 관계 회복 기회를 오히려 줄인다고 우려한다.
사과와 중재보다 법적 책임 공방이 앞서면서 학생 간 갈등이 장기화된다는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학교는 원래 성장과 회복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서로를 법적으로 방어해야 하는 공간처럼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엄정 대응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반복적 폭행이나 사이버 괴롭힘, 성적 모욕 행위는 학생의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소년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 문제 뒤에는 장기간의 학교폭력 경험이 자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초기 단계에서 세밀하게 개입하고, 디지털 폭력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는 학생 간 갈등을 조기에 중재하는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사이버 괴롭힘 전담 상담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청소년 범죄로 엄격히 처벌하는 법안도 도입됐다.
단순 처벌을 넘어 예방과 회복을 함께 고민하는 움직임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단순 징계 강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에게 디지털 윤리 교육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병행돼야 하고, 교사들에게는 생활지도 권한과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를 다시 ‘관계 회복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실 안의 작은 갈등은 언제든 심각한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실수와 충돌이 끝없는 재판으로 이어지는 사회 역시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아이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기보다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균형 감각이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