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전략가의 나라―서라벌 신라
우리나라 역사 속 삼국 시대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각 대립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그 속에서 가장 약한 나라 신라에는 세계 최고의 전략가가 있었습니다.
648년 김춘추는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당태종을 만났습니다. 645년 직접 고구려를 공략하다 실패한 당태종에게 김춘추는 이용가치가 큰 인물이었습니다.
당태종 : 경의 마음속에 품은 일이 있는가?
김춘추 : 폐하, 신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천자의 조정을 받들어 섬겨 왔습니다. 지난해 백제가 우리 신라에 깊숙이 쳐들어와, 폐하에게 조공을 바치는 길이 끊겼습니다. 이나라를 방치하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폐하에게 조공하는 길도 끊길 것입니다.
당태종 : 경의 말이 옳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삼국사기(김부식 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춘추(태종 무열왕)의 신라는 나당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쳐 없앴으며,
마지막으로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서 삼국을 통일(문무왕, 김춘추의 아들) 했습니다.
통일 신라의 수도가 서라벌(徐羅伐) 입니다.
서라벌 경주는 그 유적이 거의 보전되어 있는 천년의 고도 입니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반월성, 황룡사터 등 유명한 유적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그 중요한 유적의 면모를 살펴봅니다.
첨성대는 별 관측으로 천문을 읽어서 하늘의 운행, 역법, 농업의 지식들을 얻었습니다. 첨성대를 보면 신라가 단순한 전쟁 승리 국가의 나라만이 아니라,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계산하여 이를 활용하는 과학적 국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릉원과 천마총은 신라 왕족의 거대한 무덤이 모여 있는 수도 내 공원입니다. 특히 천마총에서는 유명한 금관, 금제 장신구, 마구류 들이 출토되어 신라 왕실의 화려한 문화를 대변해 줍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 시대 대표적 불교 문화의 걸작입니다. 751년 경덕왕 때에 김대성이 건립한 이 절에는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 백운교 등 신라 석기 기예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석굴암은 동해에서 해가 뜨면 석굴 속 좌불 석상의 이마에 박힌 구슬에 비치게 만들었습니다. 건축, 수학, 기하학, 석조 기술, 불교 철학과 조각 예술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동궁은 신라 왕궁 반월성의 별궁이며, 그곳 연못 월지(안압지)가 아름다운 조화미를 보여줌으로써, 신라 왕실의 위엄을 자랑합니다.

황룡사지는 사라진 거대한 사찰 황룡사의 터전입니다. 유명한 9층 목탑이 있었습니다. 석탑과 아울러 목탑의 정교한 기예는 신라 예술의 자랑입니다. 사찰은 없지만 그 방대한 터전은 신라 강력한 국력과 찬란한 불교 예술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경주 남산은 자연 박물관 입니다. 왕릉 13기, 산성 4개소, 절터 약 150개소, 불상 130구, 석탑 약 100기 등이 산 전체에 산재해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서라벌의 역사적 유물들을 오늘날까지 입체적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시조는 설화로부터 나옵니다.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는 박∙석∙김씨 통치자들의 나라 신라의 건국 설화를 살펴봅니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마한∙진한∙변한 삼한 중 진한의 6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날 그 촌장들이 높은 곳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임금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정(蘿井) 근처에서 이상한 광경을 발견합니다. 그 곳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붉은 빛의 큰 알이 있었고, 그 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촌장들은 그 아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서 혁거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13세가 되었을 때 왕으로 추대 됩니다. 이 왕이 57년에 건국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입니다.
신라의 왕은 단일 성씨의 독점이 아닙니다. 석씨와 김씨도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석탈해(昔脫解)는 먼 바다 건너 다파나국 왕족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한 지 7년만에 큰 알을 낳았고, 그 나라 왕은 이를 불길하게 여겨서 그 알을 궤짝에 넣어서 바다에 띄워 보냈습니다. 그 궤짝이 신라의 아진포에 도착합니다. 한 노파가 발견하여 열어보니 한 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석탈해의 탄생 설화 입니다.
석탈해 역시 알에서 태어난 신성한 인물입니다. 영리하고 뛰어난 인물 석탈해는 제2대 남해왕의 공주 아효부인과 혼인을 하였고, 이후 제4대 왕이 됩니다.
박혁거세와 남해왕의 호칭은 거서간(居西干)이고, 석탈해의 호칭은 이사금(尼師今)을 사용했습니다.
김알지(金閼智)의 탄생 설화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탈해왕 때의 어느날 밤에 서라벌 금성(金城)의 서쪽 시림(始林) 숲에서 이상한 빛이 보였고, 그 숲 속 나뭇가지에 금빛 궤짝이 걸려 있었습니다. 왕이 직접 열어 보니, 그 속에 금빛처럼 빛나는 어린 남자아이가 들어있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김(金)이라는 성을 주고 김알지라고 불렀습니다. 김알지 탄생 후 200년이 지나서 그 후손 내물왕(奈勿王)이 김씨 왕실을 열었고, 그 이후 김씨가 신라를 통치하였습니다.
이상의 다소 긴 설화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산국유사에 각각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춘추는 김씨 왕조 후대 진지왕의 후손 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김용춘이고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진지왕 입니다.
서두부터 김춘추를 길게 얘기 하는 것은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 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지나간 주류 역사는 중국 중심의 역사 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화(中華)라면서 주위 국가들을 오랑캐라고 부릅니다.
남만(南蠻)∙서융(西戎)∙북적(北狄)∙동이(東夷)가 바로 중국이 부르는 오랑캐 들입니다.
우리나라는 동쪽의 오랑캐 동이족입니다.
그 중화 역사 속에 제갈량이라는 불세출의 전락가가 등장 합니다. 그는 중국 삼국 시대 제일 약한 유비의 촉나라 군사(軍師) 입니다. 촉의 전력으로는 조조의 위나라를 이겨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갈량은 양자강 이남의 오나라의 군사 주유를 부추겨서 적벽대전에 참가하게 하여, 촉오동맹(觸吳同盟)으로 서북풍이 부는 겨울에 동남풍 화공과 연환계(배멀미를 이기게 배를 밧줄로 묶음)를 써서 조조에게 대승을 거두게 합니다.
제갈량과 마주 앉은 주유도 강동(양자강 이남)의 뛰어난 전락가 입니다.
제갈량은 조조의 동작대부(銅雀臺賦)를 끌어와서, 조조의 이교(二喬)를 취하겠다는 야심을 얘기 합니다. 이교는 강동 최고의 미녀들로서 자매 입니다. 언니 대교(大喬)는 오나라 왕 손책의 부인이고, 그 동생 소교(小喬)는 바로 주유의 부인 입니다. 조조가 이교를 탐낸다는 구절을 이야기 합니다.
제갈량이 말합니다. 쳐내려 오는 조조를 물리칠 기막힌 전략이 있습니다. 그게 무어냐 주유가 묻습니다. 바로 이교를 주면 됩니다. 이에 발끈한 주유가 오촉 동맹으로 조조를 치기로 합니다.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주유의 자존심을 건드린 제일 약소국 촉나라 제갈량의 전략은 중국 역사상 제1의 전략이라고 합니다.
김춘추가 당태종의 고구려 정복 야욕을 건드린 전략은, 어찌 보면 제갈량의 전락보다 더 값어치가 나갑니다.
동쪽의 한 줌 같은 신라의 전략가가 당태종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폐하라는 극 존칭과 신과 조공이라면서 자신을 낮추는 전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합니다. 그런 지략과 전략이 신라의 힘이 되어 당나라를 이용하여 삼국 통일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김춘추의 상대의 심중을 이용하는 전략은 서양의 비스마르크와 어깨를 견줄 만 합니다.
비스마르크는 19세기 프로이센의 재상입니다. 그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 지역은 여러 소공국(小公國)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들을 프로이센(독일의 전신)으로 통일 합니다. 우선 오스트리아와 협력하여 덴마크를 격파합니다. 다음으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여 그 나라 국력을 쪼그라 뜨립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격파하여 1871년 독일 제국을 탄생 시켰습니다.
독일의 19세기 유럽 통일과 통일 신라의 삼국 통일은, 그 규모는 다르지만 상대의 입지를 이용하는 전략은 유사합니다.
김춘추의 전략은 제갈량 및 비스마르크와 어깨를 견줄 만한 역사적으로 걸출한 전략인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전략과 더불어 우리 한민족의 자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