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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세한도’·1000억 원 땅 기부하고 현충원 안장도 고사”…손창근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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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지 아껴 쓰며 평생 검소하게 살아…“기부하면 그것으로 끝”
세한도 등 고미술품 305점, 1000억 원 상당의 임야 등을 기증한 손창근 씨.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평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문화유산과 재산을 국가와 사회에 기증한 고(故) 손창근 씨.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호텔 냉장고의 콜라 한 병도 비싸다며 밖에 나가 사 오던 사람이 있었다. 이면지를 모아 다시 쓰고 생활비도 빠듯하게 아꼈다. 그렇게 평생 자신에게는 인색했던 손창근 씨는 1000억 원 상당의 임야와 국보 ‘세한도’를 비롯한 문화유산, 부동산과 현금을 사회와 국가에 내놓았다.

 

‘얼굴 없는 기부왕’으로 불린 손창근 씨는 2024년 6월 11일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그는 생전에 660만㎡ 규모의 산림과 문화유산 305점 등을 기증하고 KAIST에도 50억 원 상당의 부동산과 1억 원을 기부했다.

 

마지막 선택도 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2년 경기 용인의 산림 660만㎡를 국가에 기증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아 국립현충원 안장 자격이 있었지만 이를 고사했다. 장례도 가까운 친인척 20여 명만 참석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손 씨는 자신의 죽음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산림청 등 기증과 인연을 맺은 기관에도 알리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사람들이 먼 길을 오게 해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생전의 기부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피했다. 1000억 원 상당의 임야를 국가에 내놓을 때는 대리인을 보냈고, 2017년 KAIST에 50억 원 상당의 건물과 1억 원을 기부했을 때도 얼굴 대신 뒷모습만 공개했다. KAIST가 여러 차례 명예박사 학위를 제안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가 평생 아낀 것 가운데는 우리 고미술이 있었다. 부친 손세기 씨와 함께 인사동을 다니며 작품을 수집했고,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는 고미술품을 보관하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김정희의 ‘세한도’.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의 ‘세한도’.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그중에서도 특별했던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국보 ‘세한도’였다. 그림 자체는 가로 70㎝ 정도지만 청나라와 조선 문인들의 감상평 등이 이어져 전체 길이는 약 15m에 달한다. 손 씨는 이 작품을 금고에 따로 보관할 만큼 아꼈다.

 

그러나 오래 품었던 작품도 결국 자신의 소유로 남겨두지 않았다.

 

손 씨는 2018년 구순을 맞아 ‘용비어천가’ 초간본과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등 문화유산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2020년에는 마지막까지 아꼈던 ‘세한도’마저 국가에 내놓았다. 세한도 기증 공로로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기증의 뿌리는 한 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 손세기 씨 역시 1973년 보물 ‘양사언 초서’를 비롯해 정선·심사정·김홍도 등의 고서화 200점을 서강대학교에 기증했다. 우리 옛 문화를 보존하고 학생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부자가 귀한 미술품을 모았지만 생활은 검소했다. 아들 손성규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손창근 씨는 이면지를 모아 쓰고, 여행지 호텔의 비싼 음료도 사 마시지 않았다. 그의 동생 역시 어린 시절 집안이 매우 가난한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가족의 생활은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손 씨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사회를 위해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모습을 접할 때면 “부와 명예를 움켜쥐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가족은 전했다.

 

그가 아끼고 모았던 미술품은 이제 개인의 집이 아니라 박물관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기증을 기리는 공간도 마련됐다.

 

정작 손 씨는 건강이 악화돼 기증한 세한도가 다시 전시되는 모습을 직접 보러 가지 못했다. 박물관의 초청을 받고도 아들 손 교수가 대신 다녀왔다.

 

손 씨는 기증을 결정한 뒤에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아들에게 남긴 말도 짧았다.

 

“기부하면 다 그만인 것이다. 서약을 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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