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없이도 살아야 하니까”…1천 곳 문 두드린 ‘시한부 6개월’ 전경철 작가
![전경철 작가. [사진 tvN '유퀴즈' 캡처]](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813/1786610278186_203962869.jpg)
개인의 헌신 넘어 우리 사회에 남겨진 '부모 이후의 돌봄'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어디에서 살까.”
중증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27세 아들 제원 씨를 홀로 돌봐온 전경철 작가는 2025년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치료하지 않을 경우 기대여명이 약 6개월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는 지난 12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자신의 치료보다 아들이 살아갈 곳을 먼저 찾아 나섰던 시간을 공개했다.
전 작가는 6개월이면 제원 씨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과 관련 기관 약 1000곳을 알아보고도 아들에게 맞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그 숫자는 한 아버지의 절박함을 넘어 부모가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된 뒤 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을 누가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160㎏에서 90㎏까지, 27년 동안 지켜온 아들
전 작가는 아들이 어린 시절 자폐 진단을 받은 뒤 사실상 홀로 돌봄을 이어왔다.
성인이 된 제원 씨의 체중이 약 160㎏까지 늘었을 때는 건강을 위해
냉장고에 쇠사슬과 자물쇠까지 설치했다.
약 1년 동안 식단을 관리한 결과 체중은 90㎏ 수준까지 줄었다.
식사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전 작가의 팔에는 흉터도 남았다.
27년 동안 아버지가 책임진 것은 식사만이 아니었다. 건강과 외출, 생활습관을 살피고 아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알아채는 것도 그의 일상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간암 말기 환자가 됐다.
전 작가는 처음에는 치료를 미루고 아들의 거처부터 찾아 나섰다.
하지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자 결국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 아들의 다음 삶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1000개의 문 끝에서 시작된 아들의 독립
전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글과 방송을 통해 알렸다. 이후 시민들의 응원과 후원이 이어졌고,
마침내 제원 씨가 생활할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됐다.
아버지는 아들이 새 환경에 적응하도록 한동안 일부러 거리를 뒀다고 했다.
약 3개월 뒤 다시 만난 부자는 함께 캠핑을 떠났다.
27년 만에 처음으로 두 사람이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전 작가는 아들에게 아빠를 잊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라는 뜻을 전했다.
다만 먼 훗날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던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27년을 지켜온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준비하는 돌봄은 더 단단하게 붙잡는 일이 아니라 손을 놓는 연습이었다.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장애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전경철 작가의 이야기는 여기서 사회의 문제로 넘어간다.
이미 부모를 먼저 떠나보낸 발달장애인은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형제나 친척이 돌봄을 이어받기도 하고 거주시설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에서 활동지원과 주거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으며,
의사결정 지원이 필요한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공후견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24시간 개별 1대1 지원을 포함한
통합돌봄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담당했던 역할을 단번에 대신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상황을 두려워하는지, 아플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약은 언제 먹는지까지 부모의 머릿속에는 자녀의 삶을 유지하는 수많은 정보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부모가 떠난 뒤’가 아니라 그전에
‘부모 이후의 삶’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준비해서는 늦다.
발달장애 자녀가 성인이 되는 시기부터 주거와 돌봄, 의료, 행동지원, 금전관리와 의사결정을 연결하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부모가 건강할 때부터 단기 체류와 독립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부모가 알고 있는 자녀의 생활방식도 다른 지원인력에게 단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입원이나 사망에 대응할 긴급 주거와 돌봄체계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형제자매에게 다시 부모의 역할을 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거는 주거지원체계가, 일상은 돌봄 인력이, 건강은 의료체계가, 법적 의사결정은 후견 등 필요한 제도가 나눠 맡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 연결을 다시 가족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전경철 작가가 전국 1000여 곳의 전화번호를 직접 찾아야 했던 일을 다른 부모가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다.
제원 씨는 이제 아버지와 떨어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없는 아침에도 밥을 먹고, 필요한 도움을 받고, 밤이면 편안하게 잠드는 삶.
전경철 작가가 1000개의 문을 두드리며 찾아 헤맨 것은 어쩌면 그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보다 아들이 살아갈 시간을 먼저 걱정했던 아버지.
이제 그 마음은 제원 씨를 넘어 부모 이후를 걱정하는 다른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향하고 있다.
산타뉴스가 찾는 ‘오늘의 산타’는 어쩌면 이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장 힘든 순간에도, 다른 사람의 내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오늘 그 이름 곁에 전경철 작가를 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