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커피보다 못한 인재 판별 시스템

청년실업의 불편한 진실…대학 ‘시그널링’ 기능 흔들린다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인재 선별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대학은 노동시장에서 유효한 ‘신호(signal)’로 기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개인의 능력과 성실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시그널링 장치’로 작동해 왔다. 기업은 지원자의 실제 역량을 완벽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학의 서열과 전공, 학점 등을 기준으로 채용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기준이 변별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어서며 대졸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희소성을 잃었고, 대학 간 교육 품질의 차이도 점점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취업준비생 김모(28) 씨는 ‘스펙을 쌓아도 기업이 원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며 ‘대학 이름만으로 평가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무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는 구조도 아니다’고 토로했다. 이는 대학이 더 이상 명확한 능력의 신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전문가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노동경제학자 박모 교수는 ‘한국의 대학 시스템은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관리가 부족했다’며 ‘대학 졸업장이 개인의 생산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시그널링 실패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 역시 자체적인 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하지 못해 인재 선별의 비효율이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에티오피아 커피 산업의 등급 심사 시스템은 시사점을 던진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생두를 향미, 산미, 결점 여부 등 세부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등급화한다. 단순히 생산 지역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실제 품질을 기준으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세밀하게 분류된다. 이 과정에는 숙련된 감별사들이 참여하며, 객관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표준화된 절차가 적용된다.
커피 수출업자 아베베 씨는 ‘같은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라도 품질이 다르면 등급이 달라진다’며 ‘구매자는 등급만 보고도 품질을 신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에티오피아 커피 시장에서는 등급이 실제 품질을 정확히 반영하는 강력한 신호로 작동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의 대학 시스템은 ‘이름’ 중심의 평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동일한 대학 내에서도 전공과 개인 역량에 따라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학벌 중심 평가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인재 선별 비용을 높이고, 구직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스펙 경쟁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능력 기반 평가 시스템 구축을 제시한다. 직무 중심 채용, 포트폴리오 평가, 실무형 교육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대학 역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산업 수요와 연계된 커리큘럼을 통해 신뢰 가능한 신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청년실업 문제는 단순한 일자리 부족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인재 판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에티오피아 커피가 품질 중심의 정교한 등급 체계로 세계 시장의 신뢰를 얻었듯, 한국 역시 보다 정밀하고 공정한 인재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