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휴머노이드가 오는 공장

산타뉴스 편집부
입력
그곳에서 노동은 사라질까, 달라질까

 

기술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휴머노이드 로봇 이야기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 앞에서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노동은 생계이자 존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머노이드를 들여놓지 않겠다는 선언에는 

기술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 마음부터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기술은 언제나 두려움으로 시작됐다.

돌아보면, 기술은 늘 공포와 함께 등장했다.

전기가 처음 공장에 들어왔을 때도,자동화 설비가 조립 라인을 채웠을 때도,

컴퓨터가 사무실 책상 위에 올라왔을 때도 사람들은 똑같이 말했다.

 

이제 사람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기술은 사람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역할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사라진 것은 노동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시간을 소모시키던 방식이었다.

휴머노이드는 사람을 밀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대신해 사람처럼 살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분명하다.

 

무겁고 반복적인 작업, 사고 위험이 큰 현장, 숙련을 쌓아도 몸이 먼저 닳아버리는 일,

이 일을 휴머노이드가 맡을 때, 사람은 일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현장을 읽고 공정을 판단하고 품질과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로 이 변화는 

노동의 축소가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에 가깝다.

 

기술을 받아들인 곳에서, 노동은 더 오래 남았다.독일의 제조업 현장에서는 

로봇과 사람이 나란히 일한다.

기계가 일을 대신하지만,결정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노동자는 더 적게 다치고,더 오래 일하며,더 안정적인 삶을 이어간다.

 

왜 가능했을까?

 

기술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기술이 들어오는 조건을 노동이 직접 설계했기 때문이다

진짜 선택지는 도입 vs 거부가 아니다 . 

휴머노이드를 둘러싼 선택지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기술을 노동을 더 소모시키는 방향으로 쓸 것인가,

노동을 더 존엄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노조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진다.

교육, 전환, 배치, 책임.이 모든 것을 설계하는 주체로서 노조는 여전히 필요하다.

 

노동의 미래는 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르게 일하는 사람이다

휴머노이드 시대의 노동은 팔과 허리를 덜 쓰고 머리와 경험을 더 쓰는 노동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 문제를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 사고를 미리 감지하는 사람.

그 역할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희망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방향에 있다. 

두려움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희망은 선택에서 만들어진다

기술을 거부해서 지켜낸 일자리는 없다.

하지만 기술을 함께 설계해서 지켜낸 노동은 분명히 존재한다.

휴머노이드는 노동을 끝내러 온 존재가 아니다

노동이 사람을 덜 아프게 만들 기회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의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 자리는 조금 더 인간다운 자리로 옮겨갈 뿐이다.

 

기술은 차갑지만,그 기술을 다루는 선택은 얼마든지 따뜻할 수 있다.

노동의 미래는 기계가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손 안에 있다.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