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예술

죽고 나면 우리는 같은 높이에서 만난다

성연주 기자
입력
류근 시 「돌아가는 길」이 말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평등

돌아가는 길 / 류근

 

새들은 땅에 내려와 죽는다
물고기는
물 위에 떠서 죽는다
죽을 땐 다 같은 높이에서 죽는 거다
죽고 나면 모두 다
같은 높이에서 만나는 거다

 

사람아
한 생애 저물거든
비로소 같은 머리맡에서 만나자
아래도 위도 없는 환한 허공에
우리끼리만 아는 약속으로만 꽃밭을 일구어서
죽은 물고기에도 한잎 주고
죽은 새에게도 한잎 주고

 

말갛게 한잎씩 나누어 주고

 

비로소 만난 우리 가슴 위에도
살아서 서럽던 날들을 이야기하자
눈물은 사람의 일
목숨 벗고 마침내 눈빛 하나로 야위었으니
떠돌던 마음 다 데려다 이불을 덮자
저문 세상에 별들도 보내고
흐린 하늘에 비도 뿌리고

 

몸 없이 꿈도 없이
우리 죽음의 거룩한 빛을 함께 나누자

 

죽고 나면 모두 다
같은 높이에서 만나는 거다
새들도
살아서 저물었던 물고기도

 

젖은 꽃잎이었던 우리 사랑도

 

시인 류근 [사진제공 류근 페이스북]
시인 류근 [사진제공 류근 페이스북]

새들은 땅에 내려와 죽고, 물고기는 물 위에 떠서 죽는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 모든 존재는 “같은 높이에서” 만난다.


류근 시인의 시 「돌아가는 길」은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삶의 방식은 달라도, 결국 모든 존재가 도달하는 자리에서는 위와 아래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통찰이다. 이 시는 생의 끝에서야 비로소 평등해지는 인간 존재를 조용히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겪는 슬픔과 갈등을 넘어서는 어떤 화해의 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삶의 높낮이를 넘어서는 ‘같은 높이’


시의 첫 구절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죽음을 설명한다.
새는 하늘의 존재이지만 죽을 때는 땅으로 내려오고, 물속에서 살던 물고기는 죽으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존재들이 죽음 앞에서는 결국 같은 높이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자연의 법칙은 인간 삶에 대한 은유로 확장된다. 시인은 말한다.


“죽고 나면 모두 다 같은 높이에서 만나는 거다.”


이 문장은 사회적 지위, 성공, 실패, 경쟁 같은 인간 세계의 위계가 결국 덧없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위와 아래, 앞과 뒤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러한 구분이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시인은 “아래도 위도 없는 환한 허공”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단순한 사후 세계라기보다, 인간이 서로의 차이를 내려놓고 만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읽힌다.


죽음 이후에야 가능해지는 화해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죽음을 비극이나 공포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 속의 화자는 죽음 이후의 만남을 약속한다.


“우리끼리만 아는 약속으로만 꽃밭을 일구어서
죽은 물고기에도 한잎 주고
죽은 새에게도 한잎 주고”


여기서 꽃잎은 위로와 나눔의 상징이다. 살아 있을 때는 서로 경쟁하며 상처를 주고받았을지라도, 결국은 서로에게 한 잎의 꽃을 건네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야 비로소 “살아서 서럽던 날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살아 있을 때는 눈물과 고통이 인간의 몫이었지만, 죽음 이후에는 “눈빛 하나”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구절은 인간 존재의 깊은 외로움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불안한 시대에 던지는 조용한 질문


「돌아가는 길」이 많은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오늘의 시대 상황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속도가 삶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위로 올라가고 누군가는 뒤처지며, 그 과정에서 관계와 마음이 쉽게 상처받는다.


이 시는 그런 시대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같은 높이”라는 문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위계와 경쟁을 돌아보게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자리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의 메시지는 단순한 죽음의 성찰을 넘어선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현실과 인간을 함께 바라보는 시인, 류근


이 시를 쓴 류근 시인은 한국 현대 시단에서 독특한 목소리를 지닌 시인으로 평가된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는 서정성과 현실 감각을 동시에 지닌 시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특히 그의 시는 인간의 외로움, 사회의 모순, 삶의 쓸쓸함 같은 주제를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특징을 가진다. 때로는 거칠고 현실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따뜻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돌아가는 길」 역시 그러한 시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복잡한 수사 대신 간결한 문장으로 인간 존재의 평등과 화해를 이야기하며, 삶과 죽음을 하나의 순환 속에서 바라본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처음의 문장을 다시 반복한다.


“죽고 나면 모두 다 같은 높이에서 만나는 거다
새들도
살아서 저물었던 물고기도
젖은 꽃잎이었던 우리 사랑도”


이 반복은 하나의 결론처럼 들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슬픔과 갈등, 사랑과 상처까지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돌아가는 길’이다.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모두 돌아가게 될 자리로 향하는 길.


류근의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차피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될 존재라면, 우리는 지금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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