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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만경강∙동진강 풍곡(豊曲)

서정규 기자
입력

 

 

영산강(榮山江)은 전라남도 곡창 나주 평야의 어머니 강입니다

전라북도 만경강과 동진강의 호남 평야(김제 평야와 만경 평야)와 더불어 조선의 곡창 지대로 불립니다

서편제 판소리의 소리꾼과 추임새꾼의 호흡에서 드러나는 한()이 상징하는 민초들의 마음 갈 곳이 서려있는 서민문화의 강이 바로 영산강입니다.

 

AI 시대 21세기에 우리나라는 주로 첨단산업이 나라 곳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공업의 부가가치로 식량을 수입해 먹기 때문에 옛적 농업 중심의 나라 살림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지만, 우리 선조들의 생명을 살려온 곡창의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의 풍요(豊饒)를 떠받치던 영산강, 만경강과 동진강  물줄기를 따라가 봅니다.

1.   영산강 물줄기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발원하여 광주, 나주, 함평, 무안과 영암 등을 거쳐서 영산강 하구둑을 쏟아내려 목포 앞바다로 흘러 드는 우리나라 제 4대강 입니다

담양군 병풍산 북쪽 용흥사 계곡이 발원지 입니다. 일설에는 담양 용소(龍沼)가 발원지 라고도 합니다.

영산강의 주요 지류와 지천을 살펴봅니다.

 

1)   황룡강

장성군을 거쳐서 광주 광산구에서 영산강 본류와 합류합니다

영산강 물줄기의 가장 긴 지류 입니다.

2)   광주천

광주시 중심을 관통하는 대표적 도심 하천입니다.

3)   지석천

화순군과 나주시를 흐르는 지류로, 일명 느들강 이라고도 불립니다. 느들의 물줄기는 나주 평야에 풍부한 물을 선사합니다. 느들 얼마나 아름다운 한민족의 이름입니까?

4)   고막원천과 함평천

함평군과 나주시 경계 부근에서 두 지천이 영산강과 합류하여, 호남평야에 가장 넓은 충적지를 선사합니다.

5)   영암천과 삼포천

목포 근처에서 합류하는 영산강 최후의 지류천 입니다.

 

2.   영산강 유래 설화

 

영산강은 *효부 영산이와 잉어 여의주 설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옛날 나주 고을에 정씨 성을 가진 부자 노인이 살았으며

그의 자식들은 모두 효자 효부 였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못된 어느 고을 원놈이 심통이 나, 그 노인을 불러서 여의주를 하나 주면서 "이것을 잘 보관하였다가 내가 돌려 달라고 하면 즉시 대령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서 이놈은 뒷구멍으로 사공에게 음흉한 지시를 내려,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 노인을 갑자기 놀라게 하여 그 여의주를 물에 빠뜨리게 하였습니다

그러고서도 그 놈 사공이 물속에 뛰어들어 찾는 시늉을 했지만, 그 강물 속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 노인은 이 일로 근심에 빠져 그만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이에 큰 며느리 효부 영산(榮山)이가 지극 정성으로 시아버지 병구완을 했습니다

하루는 지나가는 비단잉어 장수에게 잉어를 한 마리 사서 시아버님에게 국을 해드렸습니다.

시아버지가 잉어를 먹는데 그 뱃속에서 잃어버렸던 그 여의주가 나와서 원님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이 효부의 설화가 영산강의 유래 이라는 설화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영산강 입니다.

 

3.   전북의 만경강과 동진강

 

전북에는 김제 평야와 만경 평야가 있습니다

이들 평야는 만경강과 동진강이 흘러내려서 물이 많고 농토가 비옥하게 합니다.

1)   만경강

만경강은 완주군 동상면 계곡에서 발원하여 전주, 익산, 김제를 거쳐서 서해로 흘러 내립니다

만경(萬頃, 이랑 경)은 만 개의 이랑(두둑)이 있을 정도로 넓은 들판을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름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드넓은 만경 평야를 적셔 줍니다.

2)   동진강

동진강은 정읍시 내장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부안, 김제 등을 거쳐서 서해로 흘러 듭니다

김제평야의 젖줄이 바로 동진강 입니다.

 

3)   보와 저수지 축조

만경강과 동진강은 자연 지형적으로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두 강 모두 평야를 흐르다 보니 경사가 완만하고 하류에 이르러서는 바닷물이 밀려오는 감조하천(感潮河川) 이었기 때문에 가뭄이 들면 쓸 물이 없고, 밀물이 되면 짠물이 역류하여 농사를 망치는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강 유역에는 보()와 저수지를 축조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기울여져 왔습니다.

 

만경강 상류에는 어우리보와 대아저수지, 경천 저수지가 축조되었습니다.

동진강 유역은 백제 시대 벽골제, 정읍의 눌제 등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축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악명 높은 조병갑의 만석보가 동학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운암제와 도수 터널도 축조 되었습니다

도수(導水) 터널은 호남 정맥의 산줄기 밑으로 섬진강 물길을 일부 끌어와 동진강에 합류하게 한 강 유역 변경식 수리 및 발전 시설의 한 본보기 입니다.

 

그러나 이 강들의 보와 저수지는 만석보에서처럼, 수세 라는 명목의 백성들 축조비 부담으로 수탈의 또 한 가지 방편 이었습니다

 

특히 일제 시대에는 보와 저수지 축성 자금을 모두 우리 한민족에게 부담시키는 또 하나의 수탈 대상 이었습니다

공사비를 농민들에게 부담시킬 뿐만 아니라 강제 노동력으로 우리나라 농민들의 피와 땀을 빨아 먹었습니다

비록 세월이 흘러갔다고 하더라도 천인공노할 작태 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4.   호남 곡창과 일제의 수탈 항쟁 운동

호남의 곡창 지대는 탐관오리와 일제의 간악한 수탈도 있었지만, 본래 비옥한 토지와 영산강, 만경강과 동진강이 가져다 준 풍요로움 덕분에 한반도에서 가장 흥겹고 다채로운 농경문화와 풍습을 꽃피운 고장 이기도 합니다.

 

1)   노동을 예술로 승화시킨 호남 들노래와 농악

넓은 들판에서 수많은 농민들이 함께 모여 모심기를 하고 김(잡초)을 매야 했기에, 대규모 공동체 노동인 두레가 발전했습니다

마을 단위로 돌아가면서 전체 동민들이 협력하여 벼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산과 들판에서 풀을 비어다가 마을 공동의 거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고된 노동에는 농민들이 불러내는 호남들 노래가 흥을 돋우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농악 입니다

앞소리꾼이 *에헤야 대헤야* 하고 흥을 돋구면 

*지화자 로다* 하면서 뒷소리꾼이 맞받아치면서 박자와 농사 몸놀림을 맞추었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한의 민족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흥의 민족입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보면 힘든 들판 농사도 흥으로써 거뜬히 해냈던 것입니다

특히 호남 우도 농악이 유명합니다.

 

이 노래는 판소리로 이어져 동편제와 서편제로 발전했습니다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쪽의 동편제(東便制)는 전라북도 남원, 순창, 운봉, 구례 등 지리산 자락의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소리가 웅장하고 선이 굵으며 담백합니다.

서쪽의 서편제(西便制)는 애절하고 화려한 소리가 특징입니다

섬진강 서쪽인 전라남도 광주, 나주, 보성, 담양, 해남 등의 나주평야에서 발전했습니다.

우리민족의 특징인 한()을 가장 절실하게 읊어내어, 구슬프고 애절하며 가냘프고도 화려한 소리 입니다.

 

2)   쌀이 가져다 준 미식 풍습

쌀이 풍부하다 보니 쌀을 활용한 음식 문화와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인심이 아름다웠습니다

명절날, 모내기 철이나 추수 철이 되면 동네 전체가 먹을 떡을 넉넉히 쪄 내었습니다

농번기가 되면 들판 한가운데 대추나무 그늘 아래에 막걸리 항아리를 두는 술막이 섰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이든 이웃집 일꾼이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목을 축이고 갈 수 있는 술 인심이 넉넉했습니다

*전라도 인심은 쌀독에서 나온다*는 옛말이 있어온 내력 입니다.

 

3)   땅과 물에 감사하는 영농 풍습

대지가 주는 풍요로움이 워낙 컸으므로 자연에 감사하고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 풍습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김제 벽골제 정월 대보름 쌍룡 놀이, 정월 초순 마당(지신) 밟기 등의 감사제가 성행 했습니다

동민들이 집 앞에서 지신 밟기를 하면 집주인은 소중한 쌀을 한 자루씩 농악대에게 퍼주었습니다.

 

4)   머슴날과 두레 풍습

대지주들은 많은 머슴을 두었습니다

음력 월 1일을 머슴날이라고 지키며, 머슴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풍습을 지켰습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기 직전에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두둑한 용돈과 커다란 머슴 송편을 나이 수대로 대접했습니다

음력 715일 백중날에는 머슴 장가 보내기 풍습도 지켜냈습니다.

 

5.   고려 태조의 명성과 버들잎 설화

고려 태조 왕건은 전라도 나주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태봉국 궁예의 부하로 있던 시절, 나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송도 출신 왕건은 수군을 잘 이끌었습니다

영산강 물줄기를 타고 수군으로 견훤이 다스리는 나주를 공략한 것입니다

나주 전투에서 이김으로써 명장의 이름을 떨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나주의 유력한 호족 오다련(吳多憐)의 딸을 만나서 고려 제  2대 왕 혜종을 낳았습니다

*태혜정광경성목 현덕정문선순헌 숙예인의명신희 강고원렬선숙혜 목정공우창공양*(7x5=35, 35-1=34, 고려 34대 국왕 이름 외우기, 칠언 절귀로 외우던 조선 국왕 *태정태세문단세*를 기억하십니까?)

 

왕건이 나주에 머물던 어느 날 군사를 이끌고 급히 영산강 근처의 한 우물 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우물 가에 한 아릿따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목이 마른 왕건이 그 처녀에게 목이 마르니 물 한 바가지만 떠 주시오하고 청했습니다

그 처녀는 한 바가지 물을 떠

그 우물가에 있는 버드나무 잎을 따서 물바가지에 둥둥 띄워서 주었습니다

화가 난 왕건은 목이 말라 죽겠는데 어찌 장난을 치시오하면서 꾸짖었습니다.

 “장군께서 목이 마른 듯 하신데 급히 마시면 체하여 병이 나기 십상입니다

물 위의 버들 잎을 후후 불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었습니다”. 

처녀의 지혜로움과 아름다움에 감탄한 왕건은 그 처녀가 오다련의 딸임을 알게 되었고

청혼을 하였으니 이 여인이 바로 왕건의 두번째 부인 버들잎 설화의 주인공 장화왕후(莊和王后) 입니다.

 

6.   일제시대 미곡 생산 통계와 토지 수탈 만행

 

1)   미곡 생산 통계

조선시대 말기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는 그 당시 쌀 생산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남 지역(전라, 경상, 충남 지역)의 쌀 생산량이 전체의 6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곡창 지대 전라도의 생산량이 30%에 달하고 있습니다

중부 생산 지역(경기, 충북, 황해 지역)은 중급 정도의 쌀 생산 지역 이었습니다

북부 생산 지역(평안도, 함경도, 강원도)에서는 기후가 춥고 산악 지대라서 벼농사에 부적합 하였습니다

따라서 조, 옥수수, 콩 등의 잡곡을 밭에서 생산하였습니다. 소량이지만 밭벼도 생산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생산한 쌀을 왜놈들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일례를 들면 1928년도 조선 전체 쌀 생산량 1,729만 석 가운데 740만석 가량이 왜국으로 실어 갔습니다

그리고 대동아 전쟁 중인 1944년에는 전체 생산량의 무려 64%를 강탈해 갔습니다

조선을 쌀을 부족한 제놈들의 배 채우기 용으로 악용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먹는 것을 두고 제놈 배를 채우는 종자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2)   일제의 농지 수탈 정책

일제는 조선을 강제 점령 후에 농지 수탈 정책을 폈습니다

동양척식회사를 앞세워 전국 토지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정의 소유나 임자 없는 토지는 모두 몰수하여, 왜놈들을 불러들여 신흥 왜놈 지주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놈들은 가난한 조선의 농부들을 소작농으로 부려 먹었습니다

그 소작료가 무려 70%가 넘는 살인적이 수법이었습니다

정작 농민들은 기름진 흰 쌀밥은 구경도 못하고, 만주 산 깻묵이나 조로 겨우 목숨을 이겨 갔습니다.

 

이에 못이긴 농민들이 소작 쟁의를 일으켰습니다

*1926년 익산 소작 쟁의*, *1927년 옥구 소작 쟁의*, 그리고 1923년 ~1924년 *목포 인근 신안 암태도의 소작 쟁의*가 역사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 소작 쟁의를 상세히 다 기록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아픔을 아는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이만 줄입니다

서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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