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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미용실의 대화 선택권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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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말하지 않을 자유가 존중 받는 사회, 택시와 미용실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는 관계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이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택시·미용실에서 확산되는 ‘침묵할 권리’ 


 

출근길 택시 안, 혹은 머리를 자르기 위해 앉은 미용실 의자 위에서 우리는 종종 선택권 없는 대화를 마주한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 개인사로 이어지는 질문들, 대답하지 않으면 무례해 보일까 조심스러운 침묵. 최근 이러한 일상적 불편함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화 선택권’과 ‘침묵할 권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직장인 박모(35) 씨는 ‘하루의 에너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택시를 타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다. 하지만 대답을 줄이면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억지로 말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요금을 내는 순간까지도 감정 노동을 한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미용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학원생 이모(29) 씨는 ‘머리를 하는 동안 사적인 질문을 계속 받으면 긴장이 풀리기는커녕 더 피곤해진다’며  조용히 있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는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택시와 미용실은 대표적인 침묵이 허용되지 않는 서비스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한국 사회에서 대화는 오랫동안 친절과 성의의 증표로 여겨졌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감정 에너지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소통은 오히려 불편함을 키운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말 없는 택시 후기’, ‘무대화 미용실 추천’ 게시글이 꾸준히 공유되고 있다. 일부 미용실은 예약 단계에서 조용한 시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택시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말 없는 기사님이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소통 문화의 전환점으로 해석한다. 

사회심리 전문가 김모 박사는 ‘현대 사회에서 대화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 되고 있다’며  침묵 역시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의사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비스 친절과 사생활 침해의 경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 현장의 시선도 중요하다. 택시기사나 미용사 역시 끊임없는 대화를 요구받는 구조 속에서 감정 소모를 겪는다. 

한 미용사는 ‘손님이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걸 느껴도,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말을 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사전 의사 표시 시스템을 제안한다. 대화 선호 여부를 미리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면,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자 모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할 자유만큼이나 말하지 않을 자유가 존중받는 사회

택시와 미용실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는 관계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신호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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