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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들의 놀이터 된 한국

김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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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보안 체계의 한계 드러내
보안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이며,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 해커들의 놀이터가 된 한국 -

‘쿠팡 사태’가 드러낸 산업 보안의 민낯과 해법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을 둘러싼 연이은 해킹·정보 유출 논란은 한국 산업 보안 체계의 취약성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고객 정보, 결제 데이터, 물류 시스템까지 디지털로 연결된 플랫폼 산업의 특성상 보안 사고는 단순한 기업 문제를 넘어 사회적 신뢰와 국가 경쟁력에 직결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현실은 해커들의 놀이터가 된 한국이라는 자조적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한다.


 

구조적 허점 드러난 산업 보안 체계

 

전문가들은 한국 산업 보안의 가장 큰 문제로 속도와 비용 중심의 성장 구조를 꼽는다. 빠른 서비스 출시와 시장 선점을 우선시한 나머지 보안은 사후 보완 요소로 밀려났고, 이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에도 고착된 관행이 됐다. 쿠팡 역시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방대한 고객·물류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이에 상응하는 선제적 보안 투자와 통합 관리 체계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하나의 문제는 보안 인력과 권한의 한계다. 다수 기업에서 보안 부서는 IT 부서 산하의 하위 조직에 머물러 있고, 최고경영진 차원의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 이로 인해 보안은 비용 항목으로 인식되고, 정기 점검이나 침투 테스트도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고 발생 이후에야 외부 컨설팅과 시스템 보강이 이뤄지는 사후 대응형 보안이 반복되는 이유다.


 

솜방망이 처벌과 낮은 책임 의식

 

제도적 측면에서도 한계는 분명하다. 개인정보 유출 시 부과되는 과징금과 처벌 수위가 글로벌 기준에 비해 낮아, 기업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이 크지 않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 이후에도 기업 가치나 경영진 책임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보안 투자를 미루는 잘못된 유인이 작동한다.


 

보안 선진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미국과 유럽은 이미 보안을 경영 핵심 요소로 끌어올렸다. 미국의 경우 주요 기업에 CISO(최고정보보안책임자)를 두고, 이사회에 직접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대형 해킹 사고 발생 시 경영진의 민·형사 책임이 논의되는 구조는 보안을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으로 만든다.
 

유럽연합(EU)은 GDPR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위반 시 매출의 최대 4%에 달하는 과징금은 기업들로 하여금 선제적 보안 투자와 데이터 최소화 전략을 취하도록 압박한다. 

일본 역시 최근 공급망 공격에 대응해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는 전방위 보안 인증 제도를 도입하며 산업 전반의 안전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쿠팡 사태가 던지는 경고

 

쿠팡 사태는 특정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산업 전반이 공유하는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플랫폼, 금융, 제조, 공공 인프라까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 상황에서 보안 사고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특히 물류·결제·AI 추천 시스템이 결합된 플랫폼 기업은 단일 침입만으로도 연쇄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위험성은 더욱 크다.


 

 이제는 근본적 전환 필요

 

첫째, 보안의 경영 전략화가 시급하다. 보안 책임자를 이사회 수준으로 격상하고, 투자·인수·신사업 결정 시 보안 리스크를 필수 검토 항목으로 포함해야 한다.

 

둘째, 처벌과 책임의 실효성 강화가 필요하다. 대규모 유출 사고에 대해 경영진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과징금 체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셋째, 인력과 생태계 투자가 중요하다. 화이트해커 양성, 중소 협력사 보안 지원, 국가 차원의 침해 정보 공유 시스템을 통해 산업 전체의 평균 보안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넷째, 사전 예방 중심의 제도 전환이다. 정기적 모의 해킹, 공급망 보안 인증, 데이터 최소화 원칙을 법·제도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쿠팡 사태는 경고다. 디지털 강국을 자부해온 한국이 보안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업 보안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이제 보안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이며,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김란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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