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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흙길을 걸으며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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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흙길을 걸으며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입력
흙길을 걸으며 _ 김영희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흙길을 걸으며 

  김영희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숨이 막힐 것 같다. 온 몸이 한여름 열기에 맥을 못 춘다. 칠월보다 먼저 달려온 유월의 뜨거운 날씨가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재해가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을 지배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다. 자연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데, 인간으로 인해 이제 자연도 무한을 장담할 수 없는 시기가 도래했다. 실내 에어컨의 차가움과 밖의 온도 격차가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한다. 사람이 결코 만물의 영장이 아님을 공표하는 것 같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발길을 재촉한다. 

 

  '맨발의 청춘'은 가진 것 없는 삶을 대변한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신의 몸뚱이 하나로 삶을 헤쳐 나가야 한다. 몸으로 부딪혀 찢어지고 상처 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전진해야만 하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고 지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 

  
  맨발 걷기는 자신을 모두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차단하고 오롯이 맨발의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 맨발로 걷기 위해서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놓고   흙과 돌과 낙엽 위를 맨발로 밟아, 발바닥에 흙과 공기와 돌과 낙엽의 촉감이 그대로 닿는다. 

 

  내가 맨발 걷기를 시작하는 곳이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반듯한 돌계단을 오른다. 돌의 차가운 기운에 내 발의 열기가 사그라진다. 가을이 오는 바람 소리에 산길은 마른 잎이 하나 둘 쌓여간다. 어쩌다 무심결에 뾰족한 돌멩이가 발바닥에 밟히면 발바닥은 고통스러워 악! 소리가 절로 난다. 폐부를 찌르는 듯 아픔이 한순간에 몰아친다. 그 아픔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아니한 가. 갑자기 닥치는 커다란 슬픔이나 허망함, 상처는 뾰족한 도구가 되어 온 몸에 흉터를 남긴다. 살다 보면 삶이 밀물일 때가 있고, 많은 것이 일순간에 빠져나가는 썰물일 때도 있다. 그것은 기쁨 덩어리이기도 하고 슬픔 덩어리로도 온다. 어떤 것이든 너무 깊지 않고 너무 집채만 하지도 않게 오고 가면 좋겠다. 큰 욕심을 부릴 나이도 지나가고 나는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본다. 그런대로 내 앞에 놓인 일들을 해내려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그저 이 만큼으로 족해야 하겠지. 인간이 백세를 산다지만 그 긴 세월을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언제까지 내 의식 속에 얼만큼 나를 앉혀 놓을 수 있을까. 

 

  길을 걸으며 생각도 정리한다. 젊은 시절에는 무작정 앞으로만 가는 생각을 몸이 따라 갔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앞서가는 생각에 도저히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생각은 몸의 기운을 살펴서 몸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줘야 한다. 몸이 편안해야 생각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무리 생각이 많아도 몸이 따르지 못하면 계획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달리기 선수가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다리에 쥐가 나던지 발목을 접 지르던지 해서 아예 결승행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도 많이 일어난다. 

  

  우리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큰 고비를 넘으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일어선다. 때로는 넘는 것인지 넘어지는 것인지 모른 채 삶과 맞서고 그 시간을 살아왔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유연함을 갖춰야 다시 생을 이어갈 수 있다. 바람 부는 갈대 앞에 서있는 것처럼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몸을 세우며 바람을 견디고 서있다.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갈대의 속성을 닮았다. 고무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튕겨서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맨발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시작은 벌써 몇 년 전에 했지만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황톳길은 아니어도 동네 나지막한 산길에 난 흙길을 걷는다. 산길은 직선이 없다. 산은 산의 모양에 따라 이리 구부러지고 저리 구부러지며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폭우가 강하게 내리며 할퀴고 간 산자락이 깊게 패이고, 나무 뿌리는 무자비하게 드러났다. 까마귀가 깍깍깍깍 크게 소리치니 암컷인지 낮은 소리로 각각각각 하고 대답한다. 주고받는 대화가 퍽이나 살갑다. 산속 풍경은 매일매일 다르게 펼쳐진다. 

 

  삼십칠팔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나무들도 제 잎이 말라가는 모습에 속수무책이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작열하는 햇빛에 바짝바짝 말라간다. 땅 속 깊이 물길을 찾는 뿌리의 애타는 심정을 그 누가 알랴. 나무는 죄가 없건만, 누렇게 뜬 나뭇잎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온다. 겨울의 한기도 견디기 어렵지만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피할 길 없어 나무들도 몸살이 난다. 

 

  맨발로 돌계단을 오른다. 돌계단은 울퉁불퉁하여 가능한 평평한 곳에 발을 디뎌야 한다. 어쩌다 울퉁불퉁한 곳을 밟으면 발바닥이 움찔하여 몸이 뒤뚱한다. 그래도 돌이 생각만큼 차가운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뜨거운 발바닥을 시원하게 해주고, 찬바람이 불 때는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돌은 어느 경우든 다 받아들이는 속성을 지닌 것 같다. 

 

  돌계단을 다 오르고 몇 발자국 옮기면 보드라운 흙길이 나온다. 그 고운 흙길은 너무 짧아서 몹시 귀하다. 보드라운 황토에 발이 행복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제부터는 흙에 집중하여 걸어야 한다. 바위가 부서진 잘잘한 돌멩이가 깔려있어 거친 돌을 피하며 걸어가야 한다. 걷다가 바위에 부딪히거나 나무 뿌리를 건드리거나 조금 큰 돌멩이를 밟으면 내 발가락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 아픔은 한동안 지속 되서 손으로 발가락과 발바닥을 살살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 치유의 목적으로 숲 속과 흙길에서 맨발 걷기를 많이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처럼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바를 수 있다. 흙길에서 맨발로 걷고 나면, 신발을 신고 걸었을 때보다 그 힘듦이 훨씬 덜하다. 그래서 다음날 일상으로의 복귀가 수월하여 몸이 가볍게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 
 

  맨발로 숲 속을 걸으니 나무에서 나오는 여러 이로운 물질들이 호흡과 피부를 통해 몸속으로 전달되고, 발바닥과 발목, 종아리 등 더 많은 근육을 사용하게 되어 혈액 순환이 촉진된다. 걷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맨발 걷기 열풍에 각 지역 단체에서는 황톳길 등 맨발 걷기 전용 길을 많이 만들고 있다. 황톳길 걷기도 좋고 동네 나무 주변 흙길이나 공원의 흙길에서 적당한 운동을 생활화 하여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나도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어느새 숨 막히는 열기도 누그러져 숨이 편안해진다. 

 

  [수필읽기]

 

  자연은 자신을 모두 내어준다.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기쁨과 폭풍우에 가지가 꺾이는 슬픔도 모두 말없이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숭고한 자연은 끝도 없이 베풀고 끝도 없이 인내하는 숭고한 모성을 닮았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은 사람을 살린다. 열매와 씨앗, 잎과 나무 껍질, 뿌리로 인간의 건강 회복에 요긴하게 쓰인다. 

 

  사철 푸르러야 할 소나무 잎이 누렇게 떴다. 올여름 폭염에 잎이 메말라 버린 것이다. 사람들도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든 길어지는 여름 고온에 '가을이 언제 오려나' 하고 애타게 기다린다. 누렇게 일찍 떠버린 잎들은 단풍도 달지 못하고 바람이 불면 힘없이 날다가 떨어지겠지. 여름이 너무 뜨겁고 길어서 올 가을 단풍은 붉지 않다고 한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가 모호하다. 

 

  올해는 봄철 산불이 마을까지 다 태우더니, 이제 여름 폭우로 산사태가 나고 산 아래 마을은 흙으로 덮여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집을 잃고 소들은 물에 떠내려가다가 간신히 구조되었다.  수많은 차량들이 물에 잠겼고 집안의 가전제품들도 모두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물살에 휩쓸려 실종된 사람들과 가축들. 삶의 터전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은 오늘도 막막한 심정으로 하늘만 바라본다. 
 

  불과 물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나 때로는 커다란 재해를 몰고 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자연 재해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다. 살아가는 동안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 가야 하리. 
 

  자연 재해에 대한 대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만들어가야겠다. 이 지구에서 인간이 더 오래도록 살아가기 위해서.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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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살살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